근대라는 시간대를 단순화시켜 본다면 ‘혁명의 시간대’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 해방을 목표로 한 혁명이라는 수단이 과연 억압 체제로부터 인간을 완전히 해방시켰는가? 수많은 혁명가들에게 혁명에 대한 영감을 제공한 마르크스가 “모든 죽은 세대들의 전통이 악몽과도 같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머리를 짓누른다”는 통찰을 보였을 때, 그람시가 혁명은 목표를 향해 일순간에 치고 들어가는 기동전과 장구한 투쟁을 위한 진지전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을 때, 일찍이 그들은 모두 역사 속 인간 삶의 무늬만이 아니라 그 결을 바꾸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갈파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80년대 격렬한 투쟁을 통해 절차적으로 민주화된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적어도 하나의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억압 체제로서의 군부 파시즘의 퇴장은 파시즘의 종말을 의미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일상적 파시즘’의 논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파시즘이 어디에 있다는 것인가? 그것은 우리의 일상 속에 파편화 되어 있고 은폐되어서 보이지 않을 뿐 버젓이 살아서 여전히 우리의 삶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상적 파시즘’론은 바로 이처럼 우리 안에 내면화된 규율권력을 세밀히 파헤친다. 그런데 ‘일상적 파시즘’론은 크게 두 가지를 전제하고 있다. 첫째, 일상적 파시즘의 논자들은 파시즘을 대중 민주주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근대성의 산물로 보고있다. 박환무의 말을 차용하자면 파시즘은 근대 민주주의의 적자라는 것이다. 파시즘이 전근대적 전제정과 다른 것은 다양한 근대적 기제들을 통해 주체를 권력의 자발적 공모자로 생산해 내고, 근대화된 권력이 일상의 내밀한 지점까지 파고들어 행사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들의 문제 의식은 민중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 이어진다. 즉, 권력에 저항하지만 동시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것이 민중이며 근대의 여러 독재가 ‘합의 독재’로 제시되는 것이다. 둘째, 임지현의 표현을 빌리자면 “법제적 민주화가 겉으로 드러나는 사회적 무늬라면, 파시즘은 물밑에서 살아 움직이는 한국 사회의 결”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파시즘에 비판은 “우리 사회의 결을 읽는 데서부터 시작”해야하며 멀리 갈 것 없이 “우리가 서 있는 곳을 파헤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 파시즘’론의 접근법으로 무장한 이론가들은 우리 의식과 일상 생활의 심층에 내면화된 규율권력의 다양한 면면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이들은 일상에서 우리 나라 어디를 돌아다녀도 반공표어들과 마주쳐야 하고, 언제나 주민증을 지참 해야함을 비판하다. 그리고 군대 문화는 학교와 사회에서도 지속적으로 이어짐을 드러내고, 진보 세력의 대명사인 운동권마저 권위주의적 행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비판한다. 이처럼 전체주의, 반공주의, 군사주의, 권위주의로 물든 사회에 우리는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으며 우리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가고 있음을 ‘일상적 파시즘’론은 밝혀낸다. 그런데 이 뿐만이 아니다. 파시즘의 억압 방식은 여성, 빈민, 장애자, 아동 등등의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고 ‘일상적 파시즘’론은 비판한다. 여성은 근대화 과정 속에서 철저하게 도구화되었고 보수와 진보의 구분 없이 차별의 대상이었다고 질타한다. 그리고 장애인들에 대한 우리의 기형적 시각을 문제 삼으며,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우리의 유사 인종주의적인 인식을 비판한다. ‘일상적 파시즘’론을 통해 우리는 가부장주의와 혈통주의가 한국 사회에서 약자들을 어떻게 차별하는지 적나라하게 알게 된다. 그러나 ‘일상적 파시즘’의 주장이 도발적이었던 만큼 그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일상적 파시즘’론을 비판하는 입장을 몇 가지로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일상적 파시즘’론이 민중을 잠재된 파시스트로 간주한다는 비판인데 이 논리대로라면 민중을 파시즘의 공범자로 몰아버린다는 것이다. 다른 것으로는, ‘일상적 파시즘’론은 운동의 후퇴 국면에서 나타나는 문화주의와 이광수의 민족 개조론을 연상케 한다는 비판이 있다. 또 다른 비판으로는, ‘일상적 파시즘’론 극우와 내통하는 논리가 될 수 있으며 진보 허무주의라는 입장이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진보 인사들의 보수적 삶을 과도하게 강조하며 필요이상으로 ‘근본’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일상적 파시즘’론은 거시 체제 비판을 외면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일상적 파시즘’론이 운동권의 집단 습속은 비판하면서 전 사회를 뒤덮은 거대 파시즘의 메카니즘은 외면하고 있으며 변혁을 위한 실천적인 대안도 내 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다양한 비판이 ‘일상적 파시즘’론이 우리 사회에 제기한 문제 의식을 결코 퇴색시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가타리가 갈파했듯이 “욕망과 마찬가지로 파시즘은 사회적 스펙트럼 전반에 걸쳐 파편적으로 산포돼” 있으며 억압과 체제로서의 군부 파시즘이 물러간 지금이야말로 일상적 삶에 깊이 뿌리 박은 파시즘의 억압 기제와 대결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일상적 파시즘’에 대한 논의는 우리의 역사현실을 근본적으로 성찰함으로써 기존의 진보 담론과는 달리하는 새로운 진보 담론을 만드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그리고 ‘일상적 파시즘’에 대한 논의는 절차적 민주화를 획득하기 이전의 참여방식과는 궤를 달리하는 또 다른 참여방식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나누게 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과 고민이 선행할 때 정치 해방과 노동 해방을 넘어서 우리의 일상을 포괄한 전면해방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 박성호(인문·사학·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