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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溫故知新), 스승의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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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13  11: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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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고사성어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다.『논어』「위정(爲政)」편에 나오는 옛 것을 익히고 새 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뜻의 ‘자왈,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子曰,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라는 말에서 유래됐다. ‘스승의 날’을 맞아 진정한 스승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자.

5월은 ‘관계’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달이다. 아이와의 관계, 부모님과의 관계, 선생님과 제자의 사이. 게다가 근래에는 5월 21일을 ‘부부의 날’로 정해 놓았으니, 5월은 명실상부한 ‘가정의 달’이고, 좀 더 의미를 확장하면 ‘인간관계를 생각해보는 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침 ‘스승의 날’도 되고 했으니, ‘스승’은 어떤 존재인가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스승’에 대한 존칭은 대개 ‘선생님’이다. 우리는 많은 선생님을 만나왔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그 많았던 선생님들, 그리고 대학에서는 가르치는 사람을 ‘교수(敎授)’라고 하지만 그 역시 선생님의 범주에 들어간다. 그런데 우리가 만났던 그 많은 선생님 중에서 ‘참 스승’이라고 할 만한 분은 얼마나 있을까.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한다고 해서 우리는 그들을 모두 ‘스승님’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단순한 지식전달자이거나, 그 직업이 꼭 좋아서 택했다기보다는 안정적인 직업이기 때문에 택한 것으로 보이는 그런 분들도 많이 만났다. 그리고 드물긴 하지만 ‘선생’이라는 이름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저런 사람은 남을 가르치는 일을 해서는 안 되겠다 싶은 사람도 있었다. 물론 좋은 선생님들도 계셨다. 대체로는 우리가 좋은 선생님들을 주로 만났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인류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공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스승의 자격이 있다고 보았을까. 
 
『논어』「위정(爲政)」편에 보면 ‘자왈,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子曰,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라는 말이 나온다. ‘옛 것을 익히고 새 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나온 말이 ‘온고지신(溫故知新)’이다. 이는 18세기의 실학자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이 말한 ‘법고창신(法古創新 옛 것을 본받아 새 것을 창조한다)’과도 통하는 말이지만, 『논어』에서 공자가 이 말을 한 것은 ‘스승’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이 말에 대해 주자(朱子)는 다음과 같이 해설했다. “고(故)는 예전에 들은 것이요, 신(新)은 지금에 새로 터득한 것이다. 배움에 있어 예전에 들은 것을 때때로 익히고 항상 새로 터득함이 있으면, 배운 것이 나에게 있어서 그 응용이 끝이 없다. 그러므로 스승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암기나 하고 묻기나 하는 학문이라면, 마음에 터득함이 없어서 아는 것이 한계가 있다.” 주자의 이 해설만으로도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남을 가르치는 일을 하려면 어떤 자세로 학문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충분하다.
 
‘고(故)’의 의미를 예전에 들은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옛날부터 지금까지 쌓여온 지식체계라 할 수 있다. ‘신(新)’은 이제 새로 터득한 것이라 했으니, 이는 기존의 지식체계를 바탕으로 현재의 삶에 적용해 내 나름대로 깨달은 지혜, 또는 ‘신지식’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사실 지금까지 쌓여온 지식들을 습득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일단은 어느 정도의 암기도 필요하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질문도 해서 분명하게 이해하고 넘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대학에 들어오기 전에 늘 해왔던 공부방식이다. 그런데 그 정도로만 해서는 남을 가르치는 ‘스승’이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런 공부를 주자는 ‘기문(記問)’의 공부라고 비판하면서, 암기나 하고 묻기나 하는 학문이라면 터득함이 없어서 앎에 한계가 있다고 했다. 
 
『논어』「위정」15장에 보면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라는 말도 나온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남는 것이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뜻이다. 역시나 암기하고 묻기만 하는 공부에 대한 경계가 담겨 있다. 수동적으로 외부에서 들어오는 지식을 받아들이기만 하고 나름대로 그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거쳐 철저히 내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내 속에 남는 것이 없다. 이해가 수반되지 않은 암기 위주의 지식은 내 것이 아니다. 교과서 속의 지식일 뿐이다. 반대로 혼자 생각은 많이 하는데 배우지 않는다면 위태롭게 된다. 자기 사고 안에 스스로를 가두기 때문이다. 남들이 이미 인정한 객관적 사실, 체계적인 지식들을 충분히 습득해야 아집에 빠지지 않게 되고 합리적인 사고가 가능하다. 이렇게 암기하고 묻는 공부를 충분히 하고 그것을 내 나름의 ‘생각의 필터’를 거쳐 내 안에 담아둔다면, 그 지식은 진짜 내 것이 됐다고 할 수 있고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응용도 끝없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남을 가르치는 ‘선생’이 될 수 있다. 교사자격증을 땄다고 해서, 교육대학원을 나와 석ㆍ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해서 ‘스승’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자가 말한 ‘온고지신’은 스승이 갖춰야 하는 더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덕목을 제시하고 있다.
 
또『논어』「술이(述而)」편에는 ‘자왈, 삼인행, 필유아사언. 택기선자이종지, 기불선자이개지.(子曰, 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라는 말이 있다. 그 유명한 ‘삼인행이면 필유아사’의 원문이다. ‘세 사람이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그 안에 있다. 그 선한 자를 택하여 그를 따르고, 그 불선한 자는 그것을 고쳐라.’ 이 말 역시 ‘스승’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스승’이라고 하면 내가 특별히 고명하신 어떤 분을 찾아가서 제자로 받아달라고 청을 드리고, 그 밑에서 도제식으로 학문을 전수받는 방식을 떠올린다. 그런데 여건이 되지 않거나 형편이 되지 않아 스승을 모실 수 없는 사람은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가? 사실 스승은 내가 꼭 일부러 찾아가지 않아도 내 주변에 늘 있을 수 있다. 세 사람이 길을 간다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나보다 나은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으면 될 일이고, 나보다 못하다면 반면교사(反面敎師),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나의 행동을 되돌아보고 바로잡으면 된다. 내 주변의 그 누구라도 내 인격을 완성시키는 교과서가 될 수 있고 선생님이 될 수 있다.(주의할 점은, 공자가 말한 ‘학문’이란 국ㆍ영ㆍ수 같은 그런 공부가 아니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바탕이 되는 공부, 인격의 완성을 이루고 사람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공부라는 점이다)

 

지금은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선생(先生)’이라고 부르지만, 그 뜻을 따져 보면 말 그대로 ‘먼저 태어난 사람’이다. 옛 문헌에서는 ‘선배(先輩)’와 비슷한 말로 쓰였다. 반대말은 ‘후생(後生)’이니 곧 ‘나중에 태어난 사람’이란 뜻이고, 이는 ‘후배(後輩)’의 다른 말이다. 그렇다면 선생은 학생에게 ‘인생의 선배’쯤 되는 존재이다.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말이 있다. 나보다 나중에 태어난 사람들, 젊은 후학(後學)들을 두려워할 만하다는 말이다. 배움의 시작은 먼저 했을지라도 누가 진리의 심연에 먼저 다가서는가 하는 것은 선후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나보다 늦게 태어나 공부를 시작했더라도 얼마든지 나를 추월할 수 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도 있다. 『순자(荀子)』에 나오는 전체 문장은 ‘청출어람이청어람(靑出於藍而靑於藍)’이고, ‘푸른 빛깔이 쪽(파란색 염료를 만드는 식물 이름)에서 나왔지만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이다. 제자가 스승에게서 나왔지만 스승보다 더 뛰어날 때 하는 말이다. 스승의 수준만큼 오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불가능하지도 않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스승이 될 수도 있고, 스승을 능가하는 제자가 될 수도 있다. 분발하지 않을 수 없다.
/ 강지희 (기초교육대·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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