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반’이라는 우리나라의 옛말이 있다. 하지만 캐리어 하청업체의 노동자들에겐 그리고 더 나아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자신들의 생존권을 위한 투쟁을 시작하는 것조차도 두렵다. 시작이 반이라는 옛말과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작은 했지만 자신의 생존권을 되찾기 위해 혹은 생존권을 지켜내기 위해 그들이 벌일 투쟁의 길은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하다. 이전, 그 이전의 선배들이 비정규직 철폐를 외쳐댔지만 그러한 문제들은 악화됐다면 악화됐지 해결되지 않았다. 현재 우리나라의 실정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노동자들에게 노동자에 준 하는 자, 변형근로 등의 새로운 비정규직의 이름까지 달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캐리어 노조는 생존권적 요구를 가지고 지난 2월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그후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몇 차례 노사간의 합의를 제의했으나 사측의 일방적인 약속 파기로 협상테이블에서 조차 만나지 못했다. 노조 측은 합의를 얻어내기 위해 정당한 절차를 통해 파업에 들어갔었지만 캐리어 사측은 노조를 두 개의 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면서 캐리어 사와 6개 업체들의 집단폐업에 들어가 6백명이 넘는 하청노동자들이 졸지에 길거리로 내몰았다. 지난 4월26일. 캐리어 하청노조원의 집단폭행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를 끌고 가 헬멧을 씌운 뒤 무자비하게 쇠파이프로 내려쳐 정신 이상 상태까지 이르게 했다. 이처럼 캐리어 하청 노동자들의 힘든 투쟁에는 골반이 나가고, 귀가 찢어지는 것이 예삿일처럼 여기는 폭력경찰들과 용역깡패를 동원해 노동자를 폭력으로 뭉개려는 캐리어 자본의 만행이 숨어있다.

  이제 캐리어 자본은 그것도 모자라 ‘블랙리스트’를 유포하면서 그들의 취업권 마저 빼앗으며 생존권의 위협을 가하고 있다. 블랙리스트는 그 동안 캐리어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구인광고를 보고 취업을 하려고 할 때 각 업체에서 ‘캐리어에 근무한 사실을 들어 채용하지 못한다’고 밝혀 의혹을 품어왔다. 하지만 이것은 녹취록과 한 하청업체로부터 블랙리스트 명단을 확보함으로써 사실로 확인됐다. 블랙리스트와 관련하여 더욱더 심각한 문제는 이미 원청업체에 그 명단이 확보돼 있어 이력서에 쓰지 않더라도 거의 대부분의 업체에서 채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집단폐업으로 졸지에 실업자가 된 노동자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기회조차 박탈된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지난 5월29일 노조원 20여명이 광주지방 노동청을 찾아 발빠른 조치를 요청했으나 노동청은 한달 이상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고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이에 캐리어 사내하청 노조원을 중심으로 지역사회 시민단체들과 함께 사퇴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제야 겨우 8월24일부터 노동청이 대질조사를 실시했지만 어떻게 처리가 될지 미지수이고, 어떻게 결정이 될 지도 미지수이다.

  블랙리스트는 헌법에 보장된 일할 권리, 노동자의 기본권리와 정당한 요구의 통로인 노동조합 활동을 가로막는 명백한 인권 유린 행위이다. 그 누구에게도 인간의 기본적인 귄리를 짓밟을 권리는 없다. 그가 돈이 많더라도, 설령 정권을 잡은 권력가라 해도 이 세상을 바꾸는 힘인 노동자를 짓밟을 수는 없다. 이번 블랙리스트 사건의 전모를 확실하게 파헤치고 그 책임자를 엄중히 처벌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캐리어 하청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내하청노조를 협상상대로 인정하고 교섭에 나서야 할 것이며 ▲6백여명의 하청노동자 고용승계보장 ▲45명에 대한 10억 손해배상청구 및 고소 고발 취하 ▲노조활동에 앞장서 정규직 대상에서 제외된 30여명의 정규직화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 김진희 기자 real-li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