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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서양 문화의 분기점, 벼와 쌀쌀, 인간 관계 중시하는 고맥락 사회의 출발점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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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09  10:3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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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00여 개국에서 재배하지만 아시아 지역이 전체 재배 면적의 90%를 차지하는 곡물. 옥수수, 밀과 함께 세계 3대 곡물의 하나로 전 세계 인구의 40%가 주식으로 삼는 대상. 바로 쌀이다. 그런 쌀은 아시아 문명을 일으킨 근간이자 중핵으로 벼 문명에 기반한 아시아 각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모든 것을 도록 매개해온 주역이었다. 이른바 필자의 B급 ‘쌀 결정론’이라고나 할까?

그런 벼와 쌀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간접적으로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이 속담이다.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니 우리 말 가운데 쌀과 관련된 속담만 40여개에 이른다. 다음은 그 가운데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진 속담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싸전(쌀집)에 가서 밥 달라고 한다.” “쌀독에서 인심난다.” “자식은 내 자식이 커 보이고 벼는 남의 것이 더 커 보인다.”

비단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다. 벼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이웃나라 일본도 마찬가지다. 쌀 한 톨 안에 신이 7명이나 살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쌀 한 알 한 알을 중시하는 열도에서는 “쌀 한 톨에 땀 한 방울.” “밥 한 톨이라도 남기는 사람은 출세하지 못한다.” “싸전과 전당포는 삼대(三代)에 걸치면 안 된다.”(가난한 사람들을 곤란하게 하는 직업이므로 결코 오래 해서는 안 된다는 뜻). “쌀알을 세면서 밥을 짓는다.”(쓸데 없는 짓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 “쌀을 백리 밖까지 짊어진다.”(자신도 가난하지만 부모 공양에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 “싸전은 세 번째부터 나쁜 쌀을 준다” 등과 같은 속담들이 널리 인용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일본에도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사람은 익을수록 위로 향한다”는 속담이 있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해가 짧아질수록 노랗게 익으며 영글어가는 벼를 바라보던 농부들의 심정은 한반도나 열도 모두에서 뭇 백성들의 흐뭇함을 안겨 주던 대상이었던 모양이다.

사실, 벼와 쌀이 우리 생활 속에서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는 벼와 쌀을 둘러싼 낱말의 쓰임새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서양에선 단순히 라이스(rice)로 표현될 뿐인 대상이지만, 우리에겐 모내기를 심기 위한 모에서부터 벼, 이삭, 겨를 거쳐, 쌀과 밥, 현미와 백미, 흑미와 찹쌀, 멥쌀에 이르기까지 풍성하기만 하다. 비단 낱말만이 아니다. 실생활에서의 쓰임새를 보면 그 용도는 더욱 넓고 중요성은 더욱 깊다. 주된 탄수화물로서 우리들의 에너지원인 것은 둘째 치더라도 죽 또는 미음으로 쑤어져 속이 약한 환자들의 위를 보양해 주는 기특한 먹거리였다. 아, 아교나 화학용 풀이 없던 시절엔 그럴싸한 접착제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필자 역시, 어린 시절에 풀이 없으면 밥솥에서 밥을 몇 개를 꺼내 풀 대신 사용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다고 쌀만 효자 노릇을 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쌀을 탈곡한 볏짚은 싸리문에서부터 싸리 울타리, 초가집의 볏짚과 짚신, 가마니 등으로 거듭나며 조상들의 일상에 두루 사용됐다. 그야말로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특등 상품이었던 셈이다.

각설하고, 인터넷을 통해 기원을 찾아보니 벼는 약 8000년 전 처음으로 인류 사회에 등장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그 같은 사실을 유추할 수 있을까? 답은 볍씨에 있다. 고고학자들이 고대의 유물을 출토하는 현장에서 볍씨를 발견할 경우, 탄소 연대 측정법을 통해 쌀이 언제부터 섭취되기 시작했는지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한때 중국과 인도, 두 나라가 볍씨의 화석을 찾기 위한 경쟁을 치열하게 벌인 적이 있다. 세계 쌀 생산국 1위와 2위에 랭크돼 있는 국가답게 자신들이 벼농사의 시조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이제껏 밝혀진 사실들을 토대로 보면, 현재까지 벼농사의 원조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곳은 중국이다. 유전자 판독을 통해 중국 광동 지방에서 서식하던 야생초 피토리스로부터 벼가 분리돼 약 8000년전부터 재배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반도에 벼가 전해진 것은 그로부터 무려 6000여년이 지난 기원전 1세기 경부터다. 더불어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바로는 4세기 경에 이르러서야 남쪽 지방에서 벼농사가 널리 실시되기 시작했다.

약 8000년 전부터 경작되기 시작한 벼는 이후,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확연하게 갈라놓는 결정적인 매개체로 작용하게 된다. 이른바, 밀 문명과 벼 문명의 갈림이라고나 할까? 주지하다시피 서양은 밀이 주식인 반면, 서남 아시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아시아는 쌀이 주식을 이루고 있다. 그런 밀 문명과 벼 문명을 결정짓게 된 기축 변인은 바로 기후와 풍토. 밀의 경우는 내열성, 내건성이 강해 기후에 별다른 구애를 받지 않으며 강수량이 적은 지역에서도 잘 자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반면, 쌀은 고온 다습한 기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일조량도 풍부해야 하지만, 강수량 또한 많이 받쳐주어야 비로소 쌀알이 맺힐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전반적으로 일조량과 강수량이 적은 유럽의 경우, 대규모의 쌀농사가 사실상 어렵다.

여기에서 한 가지 눈여겨 봐야 할 사실은, 단위 면적당 칼로리 생산량에 있어 벼가 밀의 3배에 이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인 1명을 1년간 먹일 수 있는 밀이 생산되는 지역에 벼를 심으면 성인 3명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쌀을 수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대충 계산해 봐도 약 8억 유럽 인구의 세 배 이상이 살고 있는 지역 아시아이다. 13억 명의 중국과 10억 명의 인도, 그리고, 2억 명의 파키스탄을 비롯해 1억 명을 훌쩍 넘는 인도네시아와 일본 등을 모두 합할 경우, 대략 30억 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벼농사가 노동 집약적인 작업이다 보니 많은 칼로리를 생산하는 벼는 다시 수많은 인구 생산을 가능케 하고 그 인구는 재차 쌀 생산에 투입되면서 더욱 많은 쌀을 생산하도록 유도한다. 이른바 쌀로 형성되는 뫼비우스의 방정식이라고나 할까?

이러한 쌀 문명은 인구수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망 형성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물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벼는 태양 에너지와 물을 풍부하게 흡수하고 자라야만 하는 곡물이다. 이에 따라 모내기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여름 막바지에 이를 때까지 끊임없이 물을 공급해야 하는 것이 벼농사의 핵심이다. 하지만, 하늘이 항상 알맞은 비만 내리는 것은 아니며 행여 가물기라도 하면 한 해 농사는 망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저수지가 있는 곳에서는 일정량의 물을 마을 사람들이 나누어서 농토로 끌어들여야 한다. 자연히 물길은 마을 공동체의 결정을 통해 공정하고 엄정하게 관리되어야 하며 이기적인 행위는 용납되지 않았다. 이에 더해 노동 집약적인 벼농사는 마을 사람들이 서로 도우며 모내기를 하고 잡초를 제거하며 농약을 뿌리고 벼를 수확하도록 유도하였다. 오죽했으면 한자어인 쌀 ‘미’(米)자를 파자(破字)할 경우, ‘팔’(八)+‘십’(十)+‘팔’(八)자로 이뤄져 있다며 이는 88번의 손길을 거쳐야 비로소 한 알의 쌀알이 완성된다는 것을 뜻한다고 여겼을까?

리처드 니스벳 저, 심리학 베스트셀러인 ‘생각의 지도’에서는 그렇게 벼 문명을 통해 형성된 공동체 문화가 동양을 ‘고맥락 사회’로 유도했다고 통찰력 있게 지적하고 있다. ‘고맥락 사회’란 사람들 간의 관계가 대단히 중요하며 사회적 연결망이 촘촘하게 연결돼 있는 공동체를 일컫는 용어. 그럼, 다음 시간에는 벼와 쌀에 대한 두 번째 이야기를 풀어보기로 하겠다.

/심훈 (언론방송융합미디어 ·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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