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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와 영혼들의 이야기『이것이 인간인가』를 읽고‘한림교양필독서’서평대회 금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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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09  10:4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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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9월,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부터 전무후무한 파괴의 시대가 찾아왔다.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고 총통인 아돌프 히틀러가 세상을 떠나자 그 시대의 종말이 왔다. 하지만 그 흔적은 너무나도 강렬했다. 그 중 가장 선명한 자국이 바로 ‘아우슈비츠’다.

인간의 끝을 모르는 잔혹함과 동시에 반대에 있던 인간의 비극이 공존했던 아우슈비츠는 집단적 인종 학살이 이뤄졌던 곳이다. 아우슈비츠는 유대인을 비롯해 나치즘에 반했던 모든 사람들의 생명과 그 존엄성의 무덤이 됐다. 책의 저자 프리모 레비는 가늠할 수조차 없는 그 곳의 가혹함 속에서 살아 돌아왔다. 그리고 그 당시 겪었던 일들과 순간들의 감정을 담아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때문에 『이것이 인간인가』는 필력의 생생함을 논하는 것이 매우 불필요한 작품이기도 하다.

스물 네 살의 이탈리아 유대인이었던 프리모 레비는 전쟁 중이던 1943년, 파시즘에 저항하는 유격대를 조직해 활동했다. 그 해 12월 혐의자로 붙잡혀 아우슈비츠로 이송됐다. 아우슈비츠로 향하는 객차에 몸을 싣던 때부터 그의 감정 서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프리모 레비를 비롯해 갓 들어온 포로들, 즉 해프틀링들은 질문의 욕구에 불타올랐지만 얻을 수 있는 대답은 침묵, 구타, 명령 중 하나였다. 아우슈비츠가 비극의 대명사인 이유는 화장터로 향할 해프틀링을 선발하는 ‘셀렉챠’ 과정이 분명하게 말해준다. 두려움을 느낄 사이도 없이 자신이 죽어야 하는지,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운명이 가려진다. 불과 몇 초다. 나치스 친위대인 SS 분대원이 건네받은 카드를 오른쪽으로 건네는지 왼쪽으로 건네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이렇게 3분여 만에 200명의 해프틀링들이 각각 죽음과 생존의 임무를 부여받는다.

그야말로 육체와 영혼들의 이야기다. 2017년의 나에게 느껴지는 잔인함의 정도가 매우 경악스러워질 때쯤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첫째, 프리모 레비는 왜 책 속에서 직접적인 증오를 드러내지 않았는가? 둘째, 프리모 레비가 말하는 “이것이 인간인가”에 대한 통한의 주체는 누구인가?

첫 번째 의문에 대해서는 책의 부록에서 작가가 직접 밝히고 있다. 당시 유대인을 박해했던 사람들은 실체가 아니라는 것이 그 이유다. 자신을 괴롭힌 것은 미워할 수 있는 개인이 아닌, 전쟁과 그 시대 자체라는 의미다. 때문에 집필 과정에서 날선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절제된 언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나를 망가뜨린 시간과 대상에 대해 말하면서 이토록 침착할 수 있을까. 그 대상이 복수나 설욕을 행할 수 있는 본체가 아닐지언정 말이다.

내가 가졌던 가장 큰 궁금증이자, 책에 대한 반박은 바로 이 두 번째 의문이다.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 안의 해프틀링들은 영혼이 없는 벌레와 같았고, 하나의 도구로써 살아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자조적 통한을 반복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통한이 1절에서 멈춰지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이것이 과연 인간인가?”라는 물음은 아우슈비츠를 관리하고 포로들을 감독했던 SS 대원들에게 더 어울리기 때문이다. 압박과 죽음의 공포 앞에서 존엄성을 잃어간 사람들보다, 아무런 이유나 충격 없이 같은 인간의 존엄성을 헤치는 사람들이 더 ‘비인간’에 가깝지 않은가.

무거운 마음으로 짧은 시간 읽어나간 『이것이 인간인가』를 통해 얻어낸 결론은 무엇보다 값졌다. 가장 처음 느꼈던 감정은 현재의 삶에 대한 감사함이었다. 책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인간에 의한 극도의 공포를 간접체험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수용소로 이송되기 며칠 전 식당에서 남기고 온 따뜻한 스프 한 수저를 그리워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으며, 시간의 흐름은 곧 죽음이라는 것을 아는 그들 앞에서 다짐했다. 사소한 아픔에만 몰두해, 이 순간 스프의 온기를 놓치지 않겠다고 말이다.

『이것이 인간인가』를 통해 일상 속에서 해결되지 않는 고민의 답을 찾기도 했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이다. 해답은 그 물음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근원적이다. 프리모 레비가 죽을 배급받으러 가던 길, 피콜로 장에게 가르쳐주던 오디세우스의 노래에 답이 있다.


우리에게 생명은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태양의 뒤를 좇아 사람이 살지 않는 세상을 찾아가려는 마음을 버리지 마라!
그대들의 혈통을 생각하라!
그대들은 짐승처럼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덕과 지혜를 따르기 위해 태어났다.


-단테, 『신곡』 지옥편 중 제 26장-


인간답게 살기 위함이 존재의 이유가 된다는 싱거운 대답이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 인간의 자유의지가 무너지는 과정과 그 결과를 우리는 책을 통해 목격했기에 이보다 더 명확한 해답은 없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역사의 감동적인 증거임에 경외심을 가졌다. 『이것이 인간인가』는 온 인류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고 반복해서도 안 될 일에 대한 자료임이 분명하다. 1970년 12월,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는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 있는 제2차 세계대전 희생자 추모비 앞에 무릎 꿇고 사죄했다. 이는 전후 독일의 과거사 청산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런 역사적 과오의 인정과 사과는 역사적 증거들로부터 시작된다.

평소 클래식을 즐기는 나는 소위 말하는 ‘인생 곡’으로 17세기 이탈리아 음악가 비탈리의 ‘샤콘느’를 꼽는다. 지상에서 가장 슬픈 곡이라는 수식을 달고 있지만, 단순한 슬픔을 뛰어넘는 범위 그 어딘가에 있는 곡이다. 고독한 육체의 절망과 체념, 자유롭지 못한 영혼의 애처로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인간인가』를 다시 한 번 펴 들었다. 프리모 레비가 기차에 올랐고 화물 객차 바깥에서 문이 잠겼다. 동시에 비탈리의 샤콘느가 나의 상상 속에서 천천히 연주됐고, 곧이어 아우슈비츠행 기차의 객차 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지금 너무나 아픈 사실을 담담히 써내려간 증거를 다시 한 번 찬찬히 확인해보려 한다.

/문지연(언론방송융합미디어ㆍ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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