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어려운 질문 하나: 동물계, 척삭동물문, 포유강인 돼지는 무슨 목에 속할까요?
정답: 소목입니다.
더불어 멧돼지과에 속해 있지요.

참고로, 척삭동물문이란 쉽게 말해 척추를 지니고 있는 동물을, 포유강이란 젓으로 새끼를 끼우는 포유류를 뜻한다. 결국, 돼지는 척추를 지닌 동물들 가운데 젓으로 새끼를 키우는 포유들 중에서는 소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시간까지 5회에 걸쳐 쌀을 다뤄봤다. 이번엔 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돼지고기의 주인공, 돼지 이야기다.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니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돼지는 그 종류만 1000여 종에 달한다. 물론, 돼지를 이용한 음식 수는 그보다 더 많겠지만.

각설하고, 돼지가 가축화된 시기는 동남아시아의 경우 약 4800년 전, 유럽은 3500년 전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런 돼지는 야생 돼지인 멧돼지가 가축화가 된 후, 어떤 가축 동물보다 인류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이유는 질병에 강하고 아무 것이나 잘 먹는 데다 번식력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돼지는 넉 달이 채 되지 않는 임신 기간을 지니고 있으며 한 번에 무려 10마리 정도의 새끼를 낳는다. 더불어서 이 새끼들도 10개월이면 몸무게가 110kg에 달하며 번식이 가능한 성돈이 된다. 물론, 발정도 1년 내내 가능해서 이론적으로는 한 마리의 암퇘지가 1년에 40마리 정도의 새끼를 낳을 수 있다. 때문에 필자의 지인 가운데 한 양돈업자는 ‘신이 주신 가축’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그렇게 ‘신이 주신 가축’의 번식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일화 하나.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에스파냐인들이 본국에 돌아갔다가 다시 돼지 몇십 마리를 가지고 왔다. 돼지를 키워서 자신들의 식민지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몇 해 만에 그들이 가져온 돼지는 무려 3만 마리로 불어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돼지는 시대를 막론하고 어느 지역에서나 다산과 풍요를 상징해 왔다. 물론,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돼지는 곧, 부와 복의 상징이었다. 돼지꿈을 꾸면 복권을 사는 것은 누구나 아는 한국적 상식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화폐를 뜻하는 우리말 ‘돈’이 돼지의 한자어 ‘돈’(豚)과 같은 발음을 지니고 있기에 돼지꿈을 꾸면 복권을 사게 됐다고 해석하는 이도 있다.

아, 부의 상징인 돼지가 저금통의 모양을 대표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 거리다. 자료를 들춰보니 돼지가 저금통의 상징이 된 것은 동음이의어로 인한 착각 때문이었단다. 원래 유럽인들은 피그(pygg)라 불리는 흙으로 그릇을 만들고 그 그릇 안에 동전을 모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19세기에 어느 은행에서 판촉 상품으로 고객들에게 나눠줄 저금통을 만들면서 그릇 공장에 피그(pygg) 점토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는데 공장 측에서는 잘못 알아 듣고 돼지 모양의 저금통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대박을 치면서 이후, 저금통은 당연히 돼지 모양이 보편화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돼지를 ‘돝’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돝’의 새끼는 ‘돝아지’로 불렸다. 그러다가 불편한 발음이 도야지를 만들었고 오늘날, 돼지로 정착됐다. 개의 새끼에 ‘아지’를 붙여 강아지, 말은 망아지, 소는 송아지가 된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보면, 돼지의 새끼를 따로 부르는 명칭이 없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돝’의 새끼가 돼지니 말이다.

그런 돼지는 한국과 일본에서 오직 한 가지 이름만으로 불리지만, 일본에서는 돼지를 ‘부타’라고 부른다. 중국과 미국에서는 매우 다양한 이름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돼지를 뜻하는 한자어로 돈(豚)을 비롯해 저(猪), 시(豕), 해(亥), 체(彘) 등 다양한 한자들이 있다. 모두 돼지를 뜻하는 단어들이며 이 가운데 저(猪)는 멧돼지를, 해(亥)는 12간지의 동물 가운데 하나인 돼지를, 체(彘)는 큰 돼지를 일컫는다.
참, 한자어 집 가(家)를 들여다보면 지붕 아래에 돼지 시(豕) 자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예전부터 돼지는 집안에 들여다 놓고 키웠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예전에 한국의 남부 지역 및 제주도와 일본 오키나와에서는 화장실 밑에 돼지우리를 만들어 사람들의 분뇨는 물론, 남은 음식과 쌀겨, 술지게미 등을 먹여 키웠다. 한자어에까지 흔적을 남긴 역사를 지녀서인지 집 안에서 돼지를 키운 지역의 돼지고기는 오늘날에도 유명하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에서는 제주도와 오키나와의 돼지고기를 지역 특산물로 높이 평가해준다. 물론, 오늘날에도 이와 같이 돼지를 키우는 곳은 없지만 말이다.

영어를 들여다봐도 돼지를 뜻하는 단어는 장성한 수퇘지를 뜻하는 pig, hog, swine가 있다. 또 거세한 수퇘지는 barrow, 장성한 암퇘지는 sow, 새끼를 밴 적이 없는 암퇘지는 gilt, 젖 뗀 돼지 새끼는 shoat, 돼지 새끼는 piglet이라 불린다. 그래서 ‘위니 더 푸’라는 미국 애니메이션에는 주인공인 아기 곰 푸우와 그의 절친 동물들이 여럿 등장하는데, 그 가운데 한 아기 돼지의 이름이 피글렛이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다고 했던가? 부귀와 풍요, 다산과 다복의 상징인 돼지는 한편으로 온갖 비난과 폄하, 조소와 경계의 대상이기도 하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는 속담에서 보듯, 격이 낮고 천박한 동물은 돼지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돼지 발톱에 봉숭아물’이라는 속담도 검색되고 있다. 필자로서는 처음 듣는 속담이지만 맥락은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와 동일하다. 그래서 그런가? 12지간의 동물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배치된 이 또한 돼지다. 불결한 쥐와 뱀도 돼지 앞에 배치돼 있다. 그런 돼지는 영어에서 ‘호색한’ 내지는 ‘변태’라는 뜻의 비속어로 불리며 독일에서는 가장 심한 욕으로 불리기도 한다.

사실, 돼지가 욕심 많고 더럽다는 선입견은 모두 인간에게 비롯됐다. 개와 소, 닭과 양도 얼마든지 욕심 많고 더럽게 비춰질 수 있건만 유독 돼지에게만 온갖 오명을 뒤집어 씌웠다. 돼지가 특히 더럽다는 누명을 쓰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돼지의 땀샘에 있다. 돼지 몸에는 땀샘이 많지 않아 체온을 낮추려면 몸에 액체 등을 뒤집어 써야 한다. 하지만 인간이 돼지를 위해 물을 뿌려주지는 않기에 체온을 낮추기 위해 축사 안에서 뒹 굴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 그런 가운데 인간이 축사 청소를 제대로 해 주지 않으면 돼지는 금새 온몸이 더러워진다. 실제로 축사가 깨끗하게 정비된 경우, 용변도 한 곳에서만 보는 청결한 동물이 돼지라고 한다.

그럼, 다음 시간에는 ‘신이 주신 가축’ 돼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인문학 콘텐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심훈(언론방송융합미디어 ·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