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포유류 새끼와 마찬가지로 돼지 역시, 어릴 때는 매우 귀엽다. 아니 정말 귀엽다. 덕분에 돼지 새끼를 주인공으로 한 ‘아기 돼지 베이브’와 같은 영화도 나름대로 큰 인기를 끌었다. 물론, 아기 곰 푸우와 함께 지난 시간에 소개한 돼지 새끼 ‘피글렛’도 언제나 고정적인 팬덤이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돼지 새끼가 남다른 성장 속도로 금방 어른 돼지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영화만 보고 돼지 새끼를 키우다 낭패를 본 이들도 부지기수다. ‘아기 돼지 베이브’가 상영될 당시, 실제로 국내에서 벌어진 일이다. 결국, 몇 개월 만에 주인보다 체중이 더 무거워진 돼지를 사육주들이 몰래 내다버리는 바람에 이들을 전문적으로 보호하는 시설도 마련된 적이 있다. 2007년도 TV 동물 농장에서 나온 사연이다.

비록 국내에선 개와 고양이가 주류를 이루고 있기에 돼지가 설 자리는 거의 보이지 않지만 서양에서는 돼지가 애완 동물로서 상당히 각광을 받는다고 한다.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 보니 애완 돼지를 기르는 가장 유명한 인사로는 패리스 힐튼이 있다. MBC의 리얼 버라이어티 쇼, ‘무한 도전’에도 출연했던 그녀는 애완용 미니돼지를 애지중지 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녀가 키우는 애완용 미니돼지는 중국 돼지를 베트남에서 소형종으로 개량한 것이다. 인터넷을 통한 전언을 들여다보면 애완용 돼지의 가장 큰 장점은 털이 별로 날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능도 높아 이름을 부르면 곧잘 달려온단다. 애교도 부리고 산책도 가능하다니 왜 돼지를 애완용으로 키우는지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단지 단점이라면 배설물 냄새가 상당히 지독하다는 것이다.

돼지 이름이 들어간 영화로는 ‘아기 돼지 베이브’와 함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 있다. 하지만, 제목과 달리, 이 영화에서는 돼지가 결코 등장하지 않는다. 제목만으로 보면 사기나 다름없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구효서의 원작, ‘낯선 여름’을 연출한 극 영화다. 1996년 개봉작으로 최근 영화배우 김민희와의 불륜으로 유명한 홍상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제목은 일상 생활에서 도저히 빠져 나갈 수 없는 지경에 처해 있는 네 주인공의 상황을 빗댄 것이다. 돼지가 우물에 빠졌으니 어떻게 나올 수 있겠는가!

참, 돼지가 등장하는 영화로 얼마 전에 개봉한 ‘옥자’가 있다. 간단히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에게 수퍼 돼지 옥자는 10년간 함께 자란 친구이자 가족이다. 그러던 어느 날 ‘미란도’라는 다국적 기업에서 옥자를 뉴욕으로 납치해 간다. 이에 미자는 옥자를 찾기 위해 험난한 여정에 나선다. 그렇다면 다국적 기업 ‘미란도’는 왜 옥자를 뉴욕으로 끌고 갔을까? 이유는 옥자가 ‘슈퍼 돼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비밀리에 개발된 미래형 먹거리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기억 속에 있는 또 다른 돼지 등장 영화로는 ‘똘이 장군’이 있다. 지금의 20대에게는 매우 낯선 영화겠지만 필자가 어린 시절에는 상당한 유명세를 떨쳤던 반공 영화다. 북한의 의식화 교육에 맞서 반공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에서는 주인공 똘이가 저명한 한국인 과학자를 납치하려는 북한의 마수를 끝내 저지하고 만다는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핵심적인 주인공들을 제외한 등장인물들은 모두 동물들이라는 것인데, 북한을 대표하는 간첩 동물들로는 불여우와 붉은 늑대들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북한의 최고 지도자를 대변하는 동물은? 바로 붉은 돼지다. 이름 또한 가관으로, 붉은 돼지의 이름은 김일성이다. 그런 똘이 장군은 강렬한 색채와 흥겨운 노래, 재미있는 스토리라인으로 당시 큰 인기를 끌며 3부까지 만들어져 방영됐다. 그렇다면 김일성은 왜 붉은 돼지로 나왔을까? 이유는 조지 오웰의 장편 소설 ‘동물 농장’에서 모티브를 따 왔기 때문이다.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과 ‘1984’가 지닌 창작성을 대단히 높게 평가하는 필자는 중학교 시절 ‘동물 농장’을 너무나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난다. 특히 결말 부분은 작가의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가운데 그 완성도도 대단히 뛰어나 필자의 작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동물 농장’은 조지 오웰이 1945년에 내놓은 소설로 1917년 2월 혁명에서부터 1943년의 테헤란 회담에 이르기까지 구소련의 역사를 재현하면서 스탈린의 독재를 통렬하게 비판한 작품이다.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존스 농장의 동물들은 인간의 수탈을 참다 못해 혁명을 일으키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돼지의 독재 체제가 강화되면서 혁명 이전보다 더 심한 전체주의적 공포 사회가 닥쳐온다. 권력을 장악한 돼지 계급의 타락 때문이다. 물론, 동물 농장의 돼지들은 처음부터 불평등 특권 세력으로 나선 것이 아니라 권력을 장악해 가는 과정에서 전체주의적 특권 계급으로 변모한다. 인상적인 사실은 ‘동물 농장’에서 지혜로운 메이저 영감은 ‘마르크스’를, 독재자 돼지 나폴레옹은 ‘스탈린’을, 나폴레옹에 의해 쫓겨난 돼지 스노볼은 스탈린에게 축출된 ‘트로츠기’를 빗댔다는 사실이다.

동물들이 인간에게 반란을 일으킨다는 설정으로 인해 ‘동물 농장’은 이후, 수많은 영화,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애니메이션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한국 애니메이션으로는 2011년 작, ‘마당을 나온 암탉’이 그러한 영향을 받은 작품 가운데 하나이며 미국 애니메이션으로는 2000년에 방영된 ‘치킨 런’이 있다.

어쨌거나 돼지는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 이후, 공산당과 공산당원을 의미하는 상징 동물이 됐다. 그래서인지 북한 웹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에서는 ‘돼지’란 단어가 금칙어라고 한다. 실제로 이 단어를 댓글이나 자유게시판 등에 투고하면 금칙어 사용을 이유로 글이 등록되지 않는단다.

애니메이션 가운데 돼지가 등장하는 또 다른 영화로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들 수 있다. 주인공인 치히로는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가던 날, 아버지의 객기로 수상한 터널을 지나다 그만 신들의 세계로 들어가고 만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아버지와 어머니는 신들의 허락도 없이 음식점의 음식들을 마구 먹어버리다가 그만 돼지로 변하고 만다. 이에 치히로는 부모님을 다시 인간으로 돌리기 위해 모험을 시작하고 마지막 관문에서 수많은 돼지들 가운데 자신의 부모를 찾아내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1992년에 상영된 ‘붉은 돼지’ 역시, 돼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의 공통점이라면 감독이 모두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사실. 이와 관련해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하야오는 돼지를 자신의 오너캐로 사용한단다. 참고로 오너캐란 인터넷 등에서 자신을 대신하는 캐릭터를 의미한다. 미야자키가 어렸을 때 그의 아버지가 자신을 포함한 네 형제들을 아기돼지라 불렀기 때문이란다. 그럼, 다음 시간에는 영화 이외의 장르에서 돼지가 주요 콘텐츠로 사용된 경우를 살펴보도록 하자.

/심훈(언론방송융합미디어 ·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