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언제까지나 어른이 될 수 없어. 이렇게 말했던가. 교수님의 말은 조심스러우면서도 어딘가 완강한 구석이 있었다. 나는 별 다른 부연설명 없이도 그 뜻을 곧바로 이해했다. 어디선가 나와 가족 간의 관계에 대해서 조금 들으셨던 모양이었다. 나도 교수님도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진로 면담을 끝내고 나오면서 너무하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던 것 같다. 뭐가 너무한지는 모르겠지만. 벌써 일 년 전 이야기다.

스무 살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아 자취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날 바로 짐을 챙겨 나왔다. 변변한 캐리어도 없어 커다란 쇼핑백에 옷가지들을 싸들고 지하철을 탔다. 말이 자취이지 그냥 아예 집을 나오겠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어제 일 때문이냐? 아버지는 한번 툭 물어볼 뿐 굳이 날 붙들지는 않았다. 차마 잡을 수가 있겠나.

그 뒤 일 년이 넘도록 집에 내려가지 않았다. 몇 개월마다 오는 엄마의 ‘질척질척’한 연락이 괴로웠다. 아버지와의 불화라는 진부한 코드가 영화에서 나올 때면 노트북을 덮었다. 아르바이트와 생활비 대출로 근근이 생활할 수 있었다. 새벽, 값싼 자취방의 구질구질한 천장을 바라보며 종종 둥우리에 대해 생각했다. 왜 나는 둥우리조차 하나 없는 인간인가? 어쩌면 보편적인 일이지만은, 그땐 그게 슬펐다. 난 네가 싫어, 왜냐? 네가 날 싫어하니까! 네겐 이상적인 아버지만 아버지인거야? 울분이 섞인 그 말이 문득문득 떠오르곤 했다. 늘 서먹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서로를 신경써주고 있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그 사실은 식사 시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메뉴는 소박하지만 그 모양새를 정성껏 가다듬고, 예쁜 그릇에 예쁘게 담아, 집에 있는 재료로 나름의 데코레이션까지 해 내어놓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만의 방식이었다.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넬 용기는 죽어도 없는 겁쟁이들의 소통방법. 내가 당신을 위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작은 알림.

네 아빠가 요새 너 어렸을 때 얘기들을 꺼내는 거 있지? 그때 네가 얼마나 즐거워했고, 네가 얼마나 재잘거렸고, 둘이 손 꼭 잡고……. 가끔씩 엄마에게 전해 듣는 문장들은 참 어색하고 낯간지럽고 조금 마음이 아파서, 한편으로는 그냥 멀리 달아나버리고 싶기도 했다. 가족이라는 건 왜 이리도 어려운 건지, 얼마만큼의 나이를 먹고서야 그 온전한 답을 찾을 수 있는지, 언제쯤에야 어른이 될 수 있을지 나는 도통 알 수가 없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이전보다는 연락이 늘었다. 아버지와 개별적인 연락을 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오래된 씨앗에 천천히 물을 적시는 기분이 든다. 싹이 트기를 은근하게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연약한 식물을 가꾸는 마음으로 가족을 바라보고 있다. 다만 지금은 그저 그 서먹한 식탁에서 함께 저녁을 먹고 싶다. 요리는 내가 해도 좋고 당신이 해도 좋고.

이번 크리스마스는 집에 가자.

/민지영(철학 · 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