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1: 전 세계의 돼지는 몇 종류나 될까?
답 1: 전 세계에서 사육되고 있는 돼지의 품종은 약 1,000여종이다.
문 2: 그렇다면 돼지고기를 이용한 요리 종류는 돼지 품종보다 많을까, 적을까?
답 2: 당연히 많다. 중국에서 돼지고기를 이용해 요리를 하는 방법만 무려 1,500 가지에 달한다.

돼지고기를 이용한 중국 요리가 이 정도인데 전 세계의 돼지고기 요리를 모두 망라하면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터.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돼지고기 요리는 모두 몇 종류나 있을까?

서점에서 판매 중인 책 가운데 돼지고기를 이용한 요리 서적을 찾아보니 ‘돼지고기 요리 다모여’라는 책이 눈에 띈다. 목차를 들춰 그 수를 세보면 한국인들이 즐겨먹는 돼지고기 요리만도 58개에 이른다. 다음은 58개의 돼지고기 요리 가운데 필자가 꼽아본 몇몇 대표 음식들.

우선, 돼지고기 요리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1번 타자는 명불허전 ‘삼겹살’이다. 다음으로 ‘제육볶음’이 뒤를 잇는 가운데 ‘수육’과 ‘편육,’ ‘탕수육’이 바짝 뒤따르고 있다. 물론, ‘돈까스’와 ‘돼지불고기’도 빠지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마파두부’와 ‘순대,’ ‘돼지 목살구이’와 ‘두루치기,’ ‘돼지갈비’도 질세라 등장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돼지고기가 아시아인 중에서는 특히 한국인들과 중국인들로부터 으뜸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 요리 가운데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음식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주관적인 견해일지는 몰라도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동파육’이 아닐까 한다. 참고로, ‘동파육’은 소동파(蘇東坡)의 이름을 딴 돼지고기 요리다. 소동파는 중국 북송(北宋) 시대의 시인으로 당(唐)과 송(宋)을 통틀어 문장이 가장 뛰어났던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다. 덧붙이자면, 그의 아버지 소순(蘇洵) 또한 당송팔대가의 한 명이었다. 그런 가족력을 보노라면 세상은 참으로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소동파는 중국 남부의 항저우에 지사로 파견돼 있을 때, 범람하던 양쯔강 양변에 군사들을 동원해 제방을 구축하면서 백성들을 수재(水災)로부터 구한 의로운 정치가이다. 이에 백성들은 고마움의 표시로 돼지고기를 보냈는데 소동파는 이를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요리법으로 돼지고기를 조리해 백성들과 나눠 먹은 데서 ‘동파육’이 유래했다.

이야기가 다소 옆으로 새지만, 예술인 가운데 요리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또 다른 이로는 이탈리아의 서양 음악 작곡가, 롯시니를 들 수 있다. 대단한 식도락가인 동시에 뛰어난 요리사이기도 했던 그는 자신의 일생을 통틀어 딱 세 번 울었다고 알려진 미식가다. 첫 번째는 자신의 처녀작인 오페라가 완전히 실패했을 때였고, 두 번째는 파가니니의 귀신같은 바이올린 연주를 들었을 때, 마지막은 뱃놀이를 하다가 점심으로 준비했던 칠면조가 물에 빠졌을 때라고 한다. 요리에 일가견이 있었던 그인지라 롯시니의 이름을 딴 요리법도 있을 정도이니, 가히 소동파가 울고 갈 만하다.

각설하고, ‘동파육’은 돼지 비계로 만든 찜 요리다. 보들보들한 살코기와 입에 착 감기는 양념 맛이 일품인 ‘동파육’은 항저우 지방의 전통 요리로 삼겹살 덩어리를 소흥주 같은 전통 명주에 넣어서 삶은 후, 간장 등으로 장시간 졸여 만든 음식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조리된 ‘동파육’은 살이 연하고 고소하며 껍질은 쫄깃쫄깃한 맛을 안팎에서 동시에 낸다.

‘동파육’은 비단, 필자만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다. 중국 공산당의 초대 주석, 마오쩌둥이 평생 즐겼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필자가 존경해 마지않는 만화가, 고우영이 가장 좋아했던 음식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고우영의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열국지,’ ‘십팔사략’ 등 거의 모든 작품들을 섭렵했던 필자는 중국의 항저우 현지에서 ‘동파육’을 접한 고우영의 만화 컷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요리하기도 까다로워 ‘동파육’을 쉽게 먹을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동네 중국 음식점에서는 ‘동파육’을 취급하지 않는 까닭에서다. 때문에 그런 ‘동파육’을 일본에 체류하던 때에 24시간 편의점, ‘세븐 일레븐’에서 발견했을 당시의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비록, 얇게 썬 행태에 4~5쪽 정도를 비닐로 압축 포장해 판매하고 있었지만, 가격도 2000원 안팎으로 저렴했기에 연구년을 맞아 도쿄에 체류하는 동안, 매일 밤 맥주와 함께 ‘동파육’을 먹었던 기억이 지금껏 정겹기만 하다.

하지만, 24시간 편의점에서도 ‘동파육’을 팔고 있는 상황과는 모순적으로 한·중·일 삼국 가운데 돼지고기가 가장 인기 없는 국가 또한 일본이다. 근대화가 되기 이전까지 주로 생선 요리를 먹었던 까닭에 육식이 낯설었던 일본인들에게 그나마 가장 부담 없는 육식으로 다가왔던 식품은 소고기였다. 해서, 일본 소고기를 의미하는 ‘와규’는 존재해도 ‘와돈’은 그다지 유명세를 떨치지 못하는 곳이 일본이다. 그나마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소비하는 돼지고기는 돈가스용 안심과 등심이다. 기름이 많지 않고 살코기가 대부분인 안심과 등심은 입맛조차 삼겹살과 족발을 가장 많이 찾는 한국인들의 대척점에 있는 일본인들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반면, 서양에서는 돼지고기를 가장 즐겨 먹는 나라가 독일이란다.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니 독일의 돼지고기 사랑은 중국인 못지 않다고 한다. “게르만족은 돼지고기만 먹는다”는 문구와 함께 “심지어 돼지비계도 날것으로 먹는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니 한국인, 중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돼지고기의 참맛을 안다고 인정해 줄 만하다.

덧붙이자면 스페인의 ‘하몽’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돼지고기 요리 가운데 하나다. ‘하몽’은 돼지의 허벅다리를 소금에 절인 후, 야외에서 자연스럽게 숙성시킨 햄이다. 생으로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하몽’은 짭짤하면서도 쫄깃한 맛이 일품이란다. 참고로, ‘동파육’과 ‘하몽’은 필자가 우리나라의 세계화, 국제화를 상징하는 동서양의 대표 먹거리로 꼽는 돼지고기 요리들이다. 이들 음식을 20세기에는 결코 먹어본 적이 없는 이유에서다.

그럼, 마지막 칼럼이 게재되는 다음 호에서는 돼지를 둘러싼 오해와 갈등, 그리고 분쟁과 전쟁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정말 돼지가 역사에 영향을 미쳤을까? ‘돼지코’ 뒤집는 소리인지 아닌지는 다음 시간에 알아보면 될 것이다.

/심훈(언론방송융합미디어·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