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경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말이 무엇일까? 창조경제나 경제민주화 등 무수히 많은 단어가 떠오르지만 그중에서도 ‘양적완화’가 단연 화두다.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은 4ㆍ13 총선을 앞두고 당시 초저금리 정책으로는 경기부양에 한계가 있으니 ‘한국형 양적완화’를 하루빨리 도입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에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양적완화의 도입은 결국 대기업의 자산을 증가시켜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라 반박했다. 여야간 갑론을박이 계속되는 가운데 강봉균 공동선대위원장의 발언은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반면 세계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큰 의미가 없고 오히려 정부와 중앙은행 간 협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양적완화란 중앙은행이 직접 국채나 채권 및 금융자산을 매입한 후 돈을 지급하는 것으로 시장에 직접 유동성을 공급해 경기를 활성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는 저금리일 때 실시하는 통화정책으로, 더이상 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부양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때 시행하는 경제 정책이다. 기준금리를 조절해 간접적으로 시장의 유동성을 조절하는 기존 중앙은행의 방식에서 벗어나 시장에 통화량 자체를 증가시키는 통화정책이다. 쉽게 말해 중앙은행이 직접 돈을 뿌려 경제를 살린다는 것이다.

양적완화는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라고 불리던 2008년 세계금융위기 당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는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을 정도로 적극적인 양적완화 정책을 펼쳤다.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은 그가 한 강연회에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 헬리콥터를 이용해 돈을 뿌려야 한다”는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말을 인용하면서부터 생겨났다.

일본도 양적완화 정책을 펼친 바 있다. 아베 신조 일본총리는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장기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2013년 4월 1차 ‘아베노믹스’라 불리는 양적완화를 시행했다. 이어 2014년 10월 2차 양적완화를 실시했는데, 국고를 열고 금리를 낮춰 엔화의 가치 하락을 유도해 수출을 증가시킴으로써 내수 경제를 활성화하고 고용 시장을 확대하려고 했다.

문제는 양적완화가 긍정적인 효과보다 부정적인 효과가 많다는 것이다. 우선 양적완화는 경제 강국 위주의 경제정책이다. 현재 기축통화국으로 지정된 국가는 미국과 영국뿐이다. 달러를 찍어낼 수 있는 국가가 세계에 2곳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이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양적완화 정책을 펼쳐 달러를 대량으로 찍어낸다면 달러의 가치는 지속해서 하락할 것이다. 가치가 하락한 달러가 시장에 풀리게 되면 상품의 본질은 그대로지만 가격은 상승하게 된다. 예를 들어 1달러면 살 수 있었던 달걀을 더 이상 1달러에 사지 못하고 상승한 가격인 2달러에 사야 하는 ‘인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한다. 이와 같은 미국의 경제위기 탈출을 위한 방안이 기축통화인 달러를 사용하는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플레이션은 물품 가격에 거품을 끼게 해 재산을 낭비하게 하며, 인플레이션 현상이 지속될수록 소비가 위축돼 자본의 유동성이 약화된다.

또한 양적완화의 시행은 국가 전체의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이 아니라 상위 소득 계층의 이익만 늘어나게 한다는 비판도 있다.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부터 시작된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미국은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했다. 하지만 당시 시장에 풀린 막대한 자금은 대기업과 대형금융기관의 이익만 늘어나게 했고, 상위 소득 계층과 서민 간의 빈부 격차는 심화됐다는 분석이 있다. 부동산 시장 거품으로 인한 착시현상이 중산층을 포함한 일반 시민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미국 UC버클리대 에마뉘엘 사에즈 교수는 “2008년에 벌어진 금융위기 이후로 소득 상위 1%의 사람들이 양적완화 정책으로 시중에 유통된 자금의 최대 수혜자”라며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미국의 평균소득 증가율은 약 6%지만 이를 소득별로 구간을 나눠보면, 하위 99%의 소득 증가율은 약 0.4%에 그치는 반면, 상위 1%의 소득 증가율은 약 31.4%”라고 설명했다. 이는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 활성화를 위한 양적완화 정책의 시행이 오히려 소득별 빈부 격차를 심화에 큰 역할을 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경제정책은 단순히 시행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정책은 파급력이 크고 시장 환경에 따라 민감하게 변화한다. 다른 국가에서 성공적으로 작동한 정책이라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다르게 작동할 수도 있다. 양적완화가 미국과 일본에서 성과를 거뒀다 할지라도 무작정 도입해서는 안 된다. 국가 실정에 맞는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관료들은 탁상공론 정책을 수립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정에 맞는 정책을 찾아야한다. 우리 경제계에 큰 화두로 던져진 양적완화, 더욱 신중한 접근이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