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김지현          

귓등으로 나를 듣고
감은 눈으로 나를 보고
오늘을 옹알이기도 전에 내일을 떠드는 ‘바깥’이더라
도랑에 물 흐름으로 비밀스럽게 날 알아주는 이 없으려나
간신히 껍데기만 짊어지고 ‘안’으로 들어왔다

부엌 계수대 아래 선반을 열어 보니
못생긴 고구마 하나
덩그라니
누웠다

무심했던 나 역시
네겐 바깥이었으리라

바깥이 널 알아주기만 기다리다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고구마로
얼마나 쓸모 없는 고구마로 삭고 있었는지
눈에 띄지도 않던 고구마 하나

그리도 속이 상해 보랏빛 얼굴이더냐
그리도 뾰로통해 심술로 싹을 틔웠더냐
그리도 곪아선 거뭇한 갑옷으로 네 몸을 감싸 맸더냐

못생긴 고구마
먹을 수나 있을는지, 칼로 이 곳 저 곳 잘라냈다
물로 씻었다
냄비를 꺼내 고구마를 넣었다
뚜껑을 닫았다
.
.
.
냄비 구멍 사이로 고구마의 숨 방울이 식식 새어 나온다

그래 푹푹 삶기어라
눈물방울도
쿵쾅거리던 네 슬픈 심장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썩어 문드러진 네 멍 자욱도
하나도 남김없이 푹푹 삶아 잠재워라
.
.
.

뚜껑을 열었다
촉촉히 젖은 고구마를 건져냈다
그리고 접시에 담았다

자알 삶아진 고구마

어줍잖은 심술도
검버섯 같던 상처도
서투른 보랏빛 고구마도 이젠 없다

‘바깥’은 이미 의미 없는 것이고
쓸모 없는 것이 없는 것이며
보잘 것 없는 것이 없는 것이다

붉게 뜨거워진 고구마를 반으로 좌악 갈랐다

자알 익은 고구마 ‘안’

아!
그것은 중천의 태양보다 눈부신 황금이었고
가을의 고개 숙인 보리 이삭보다 노오랬다

하아.

고구마의 마지막 입김이
넘실넘실 덩실덩실
내 ‘안’을 타고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