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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름... 아버지>'제25회 한림문학상' 소설부문 수상작

최진석 | news@hallym.ac.kr

승인 2010.02.22 17:25:07

자, 그럼 최종 판결하겠습니다. 피해자 김재범은 그 범행이나 수법이 끔찍하나 범행당시 만취 상태로 심신장애의 상태에 있었고, 그 죄를 뉘우치고 있으며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하였으므로 피고인 김재범을 징역 10년 집행유예 5년에 처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알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내게는 짜여진 운명 같았다. 먼 과거부터 예견되어 있었던, 피할 수 없는 운명 말이다…….

10년전.

흰 눈이 수북이 쌓인 어느 겨울밤 나는 베개를 껴안고 마루에 걸터앉아 있다. 옆에 나란히 앉은 할머니가 내게 묻는다.
“아직도 싸우니?”
이내 나는 미닫이 문틈 사이로 고양이 눈을 한 채 확인을 한다. 한 남자와 여자가 격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바로 우리 부모님이다. 5살 밖에 되지 않은 나는 부모님이 왜 싸우는지 알 수 없었고 말릴 수조차 없었다. 그저 내 몸뚱이만이 경기를 일으키는 것 마냥 떨고 있었다. 나는 그 후로 하루하루를 악몽과 싸워야 했다. 하수구 위를 덮는 보도블록 골목길을 따라 걸으며 그 보도블록의 구멍의 수를 새는 꿈이었는데, 마지막에 그 구멍의 숫자가 틀려 당황한 나는 현실에서 그만 울음을 터트렸고 심한 경기를 일으켰다곤 한다. 꿈에서 깨면 나는 항상 할머니의 품속에서 웅크린 채 흐느끼고 있었다.
“괜찮다, 재범아 그저 악몽일 뿐이야.”
할머니는 항상 같은 말을 되풀이 하시며 나를 진정 시키셨고, 그 옆에서 할아버지와 형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두운 표정으로 담배만 태우시던 할아버지가 말했다.
“몸이 허약해서 그런걸거야. 내일 약을 한재 지어 와야 겠어.”
할아버지는 다시 담배를 깊게 빨아 들였고, 할머니는 말없이 등을 토닥여 주셨다...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다는 듯이…….

어려서부터 나는 어딜 가든지 걷는 법이 없었고, 항상 뛰어 다녔다. 그랬기 때문에 항상 넘어지기 일쑤였고, 자연스레 상처가 다 아물 날이 없었다. 집안에 손님이 온 날은 아무 이유 없이 새 옷으로 갈아입었고 그렇게 매번 갈아입기를 좋아했다. 왜 그랬는지 지금까지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저 새 옷이 좋았다. 우리 집은 기와집이었는데 부엌 옆엔 외양간이 있었고 그 곳엔 두 마리의 소가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뒷산으로 넘어가고 어둠이 찾아올 즘이면 마을 집집마다 긴 굴뚝에선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는데, 우리 집도 다르진 않았다. 그것은 바로 여물을 끓이기 위해 불을 피운 것이었고 소밥도 주고 방도 뜨끈뜨끈하게 데우는 1석 2조의 방법이었다. 소에게 여물을 다 주고 나서야 어머니는 가족이 먹을 저녁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된장국이 구수하게 끓었고 김장독에서 갓 꺼낸 아삭아삭한 김치와 들에서 캐온 고들빼기가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저녁상이 다 차려질 때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밭일을 마치고 돌아오셨고, 빨간 백열전구 밑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다. 오늘도 그 자리에 아버지는 없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그의 안부를 묻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의 자리는 없었던 것처럼... 오늘도 어김없이 약주를 하느라 일찍 들어오지 않은 걸 가족들은 알고 있었다. 수저를 뜨다 말고 할아버지는 담배를 피우신다. 담배가 쥐어진 손가락은 심하게 갈라져 있었고 그 사이로 아무리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세월의 때가 짙게 묻어 있었다. 손톱은 무뎌졌고, 주름이 많고 부은 손은 어린 내가 봐도 안쓰러웠다…….
엄마가 끓인 된장국은 정말로 맛있었다. 바로 할머니가 손수 담근 된장을 넣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음식은 동네에서 유명했다. 특히 가을철 추수가 한창일 때 마을 사람들은 줄을 서서 직접 담근 막걸리를 담아갔다. 지금도 부엌 한 구석에서는 누룩 익는 냄새가 진동한다. 그 특유의 시큼한 냄새가 난다는 것은 추수할 시기가 다가왔음을 알려주었다.
바로 그때였다. 어두운 그림자로부터 그 형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큰 길 건너 사시는 두부집 할머니였다.
“저녁들 먹는 거여?”
할머니가 대답했다.
“어쩐 일이여 아직 안 먹었으면 같이 와서 한술 떠.”
“응 아니여, 아까 먹었구먼. 다름이 아니라 석촌네서 재범애비가 누워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응께 퍼뜩 와서 댈구가”

두부집 할머니는 말을 끝내면서 걱정스런 눈빛으로 어머니를 쳐다보셨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없이 형과 함께 아버지를 찾아 나섰고, 할아버지의 안쓰러운 눈빛과 할머니의 한숨이 어머니의 뒤를 이었다. 이런 일은 흔한 일이었고 하루의 일과 중 하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소리가 집으로 점점 가까워졌고 그 소리는 가족들에게 아버지가 왔음을 알렸다. 아버지는 오늘도 변함없이 다 늦은 시간에 저녁밥상을 찾았고, 밥을 따로 차려온 밥상머리에서 오늘도 어머니와의 말싸움은 시작됐다. 나는 그 옆에서 늘 가슴조려야 했고, 순간순간마다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오늘은 제발 싸우지 말고 편히 잤으면 좋겠어요.’라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매일 반복되는 그런 행동들이 불만이었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잔소리와 말대답이 문제였다. 시간이 갈수록 어머니의 잔소리는 늘어났고 술에 취한 아버지의 인내심도 이내 바닥을 드러냈다. 결국 그의 입에서는 거친 욕이 흘러나왔고 동시에 작은 밥상은 날아갔다. 갈색의 된장국이 벽지를 물들였고, 바닥엔 깨진 반찬 그릇들이 나뒹굴었다. 그의 손바닥은 매서웠고 멈출 줄을 몰랐다. 이내 나는 울음을 터트렸고, 달려오지 않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원망스러웠다. 그의 우렁찬 괴성은 고요한 온 마을에 퍼져나갔고, 지칠 대로 지치고 나서야 싸움은 끝이 났다. 아버지는 이불도 덮지 않은 채 구석에서 웅크린 채 잠이 들었고, 어머니는 흩어진 반찬들을 치우기에 바빴다. 그렇게 그날의 악몽도 마무리 되는 듯 했다.

다음 날이 밝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어머니는 나를 깨우셨고, 찬란하기만 한 아침 햇살도 어제의 그 악몽과는 너무나 달랐다. 동네의 또래 친구들은 유치원을 다녔지만 가정 형편상 그러지 못했다. 아침이면 등교 준비에 바쁜 형의 행동을 지켜보며 나는 물었다.
“엄마, 나는 왜 학교 안가?”
“넌 아직 어려서 그래, 좀 더 크면 너도 갈 수 있어.”
“내 친구들은 유치원 가는데? 그럼 개네는 나보다 더 큰 거야?”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은 채 왔다 갔다 바쁜 척을 했다. 나도 알면서도 가끔 질문을 했고 혹이나 다른 대답이 나오지는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역시나 답은 항상 똑같았다. 할아버지는 논물을 보러 이른 아침부터 나가셨고, 할머니도 나갈 채비를 하시며 막걸 리가 얼마나 익었는지 확인하셨다. 그날도 어김없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어젯밤의 악몽이 다시는 없을 것처럼 약속이라도 한 듯이…….

황금물결을 일렁였던 누런 논밭이 순백의 하얀 옷으로 갈아입고, 그렇게 몇 해를 반복하더니 나도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었다. 예전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던 집과 그리 멀진 않은 가까운 곳에 이사를 했고, 내가 변한 만큼 세상도 많이 변해갔다. 하지만 그 중에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는데, 바로 가난과 악몽이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농사일을 거들었고, 일이 없는 겨울철에는 일거리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셨다. 짧게는 3주 길게는 한 달이 넘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없는 동안 가정의 평화는 잠시나마 지속될 수 있었고, 형과 나는 그 시간이 너무나 좋았다. 가끔 안부 전화가 걸려왔고 어머니는 며칠 뒤에 아버지가 오실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가 돌아오는 날에 그의 두 손엔 통닭 한 마리와 돈다발이 든 봉투가 들려 있었다. 오랜만에 가족을 봐서 기쁜지 아버지의 표정이 좋았다. 우리에겐 통닭을 주셨고 어머니에게는 돈다발을 주셨다. 어머니는 봉투 안에 있는 돈다발을 세어보셨고 아버지는 이내 소주를 찾으셨다. 오랜만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통닭을 먹었고, 오랜만에 보는 고기라서 그런지 우리가족은 금새 한 마리를 다 먹어치워 갔다.
“재수야, 아버지 오랜만에 오셨는데 무슨 말이라도 해야지?”
묵묵히 닭다리를 뜯고 있던 형에게 어머니가 재촉했다.
“추운데 수고하셨어요 아버지.”
형은 뒤이어 아버지에게 소주 한잔을 따랐다.
“그래, 아버지가 좀 더 많이 벌어왔어야 했는데...일이 잘 안 풀리는구나…….”
소주를 연거푸 두 잔을 들이킨 아버지는 봉투에서 만 원짜리 두 장을 빼서 나눠 주셨다. 정말 오랜만에 받아보는 용돈이었지만 그리 기쁘진 않았다. 한 달 넘게 외지에서 일을 다녀오셨지만 겉보기에도 돈 봉투는 두툼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그렇게 힘들게 돈을 벌어올 때 마다 멀쩡했던 것들이 꼭 말썽이었다. 지난번엔 세탁기가 고장이 나서 고생을 했는데 이번에는 보일러가 문제다. 하는 수 없이 새것으로 교체해야만 할 상황이었다.
어쨌든 아버지가 돌아옴으로 인해서 잠시 동안의 평화가 언제 깨질지 조마조마 했고, 긴장해야 했다.

나는 학교에서 반 친구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운동도 곧 잘했고 특히 유머러스한 말을 친구들이 좋아해 주었고, 각종 행사에서 응원단장을 3년간 맡아 왔다. 여자아이들한테 유독 인기가 좋아 발렌타인데이 아침에 교실에 도착하면 내 자리엔 항상 초콜릿 바구니로 가득 메워졌다. 그런 기념일이 있는 날이면 나는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당연히 이런 나를 시기하는 무리도 따랐다.
2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리고, 쉬는 시간에 나는 교실에 앉아 만화책을 읽고 있었는데 반장이 나를 불렀다. 담임선생님이 교무실에서 나를 찾는다는 것이었다. 만화책을 책상 서랍에 밀어 넣고 교무실로 향했다. 문을 열자 탁한 공기가 가슴속으로 밀려 들어왔고 주위를 몇 번이고 두리번거리고 나서야 담임선생님을 찾을 수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는 휴게실로 나를 인도했다. 아직 총각이라 그런지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피부는 들떠 있었다. 몸에서는 담배 냄새가 코끝을 찔렀고 허리의 벨트는 흘러내리는 뱃살을 겨우 부여잡고 있었다.

“어 그래, 재범아 밥은 먹었니?”
“네 먹었어요.”
“다른 게 아니라 몇 가지 물어볼게 있어서... 부모님은 무슨 일 하시니?”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는 자연스럽게 선생님의 신발을 쳐다봤고, 머리만 긁적일 뿐이었다.

“괜찮아 재범아, 선생님한테 말하기 좀 곤란한 거니?”
침묵이 흘렀다.

“농사지으시니? 아니면 막노동 하시는 거야?”

나는 그제서야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창피했다. 선생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가 없었다. 그가 아버지의 직업을 묻는 이유는 간단했다. 몇 달째 육성회비를 못 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1년에 4번을 내게 되는데, 세 달에 10만 8천원... 우리 집은 그 돈이 없었다. 이래저래 다른 공과금을 내고나면 입에 풀칠하기에 빠듯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선생님은 간단한 전화통화를 하셨다. 희미하게 들리는 대화 내용으로나마 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통화가 끝이 나고 그는 한손에 종이 몇 장을 들고 와선 내게 내밀었다. 한 장은 무료급식비신청서, 그리고 나머지 한 장은 육성회비감면신청서였다.

“재범아, 힘이 들면 미리 말하지 그랬어. 선생님이 미안하구나.”

신청서에는 여러 가지 기재사항들이 있었다. 조금 망설이다가 하나 둘 써 내려갔다. 난 이런게 싫었다. 아마도 집에 가서 써오라고 했으면, 가는 도중에 버렸을지도 모른다. 가난이 싫었고, 게다가 공부를 잘해서가 아닌, 그저 가난해서 관심 받는 내 자신이 죽도록 싫었다.
그 이후로 졸업할 때까지 학교에 내야 하는 각종 공과금에서 혜택을 받았고, 방학 때가 되면 무료급식대신 농산물 상품권이 주어졌다. 하지만 이런 관심들이 나를 더욱 빗나가게 만들었고 활발했던 내 성격조차 조금씩 바꿔 버렸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줄곧 반장도 도맡아하며 공부도 상위권이었지만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가방은 가벼워졌고 누구나 꿈을 꾸지만 나에게 그 꿈은 점점 희미해져만 갔다. 결국 대학진학에 실패했고 방황하던 나는 군 입대를 선택했다.
“아버지, 공부가 적성에 안 맞는 거 같아요. 군대부터 일찍 다녀올게요.”

아버지는 내 말을 믿지 않으셨다. 아니, 조금은 당황해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으신 걸까? 그 뒤로 연거푸 물어보셨고, 마루에서 줄담배를 태우셨다. 조금은 섭섭하신가 보다. 입대 날짜를 받아 놓고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느라 귀가하는 시간이 매일 늦어졌고 해가 가장 뜨거울 때 쯤 잠에서 깨어났다. 나의 하루는 너무나 한가했고 평온했다. 그리 크게 재미있지도 않았고, 심심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게 흘러갔고, 어느덧 입대 날이 가까워졌다. 입대 하루 전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오랜만에 외식을 했다. 작은 아버지도 오셨다. 고기는 푸짐했지만 어느 누구하나 맛있게 먹지 않았고 술병만 늘어갈 뿐이었다. 작은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군대... 그거 아무것도 아니다. 적당히 시간만 때우다 나오면 돼.”
작은 아버지와는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지만 왠지 그 말이 따듯하게 내 가슴에 와 닿았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계속해서 술잔을 나누어 드셨고, 이런 저런 애기 끝에 식사는 끝이 났다. 할아버지는 담배를 꺼내 무시곤 제일 먼저 밖으로 나가셨다. 힘든 농사일 때문인지 아니면 나이 탓인지 한쪽 다리를 절룩거리며 나가시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할아버지의 뒷모습은 초라해 보였고 굽어진 허리가 왠지 모르게 내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 그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뒷모습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그때 난 알지 못했다. 그때 알았더라면 참 좋았을 것을…….
그렇게 난 가족들의 안타까움 속에 입대를 했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 아침 할아버지가 많이 슬퍼하셨다고 하셨다.

군대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단 견딜만 했다. 시대가 많이 변해서 인지 시설도 좋았고, 보급되는 물품 또한 밖에서의 그것들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훈련소 생활이 끝나고 나는 강원도 홍천으로 자대 배치를 받았고, 느리게 가는 시간과는 달리 그 생활에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군대는 학교생활과는 달랐다. 특출하게 남의 눈에 띄어서도 안됐고 너무 뒤떨어져도 안됐다. 그저 중간쯤 가기만 하면 됐었고, 그것보다 조금 더 잘하면 됐었다. 훈련이 없는 기간이나 주말이면 운동을 하거나 아니면 텔레비전 앞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고, 허성세월 같을지 모르겠지만 군대에서의 시간은 나름대로 하나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8시쯤의 일이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관물대 앞에 앉아 뜯어진 전투복을 꿰매고 있었는데 멀리서부터 나를 쳐다보며 다가오는 고참의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당직을 서고 있던 허병장이 내 앞에 섰다. 그는 평소와는 다르게 너무나도 침착했다.
“재범아, 집에서 연락이 왔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더라…….”
“잘못 들었습니다. 죄송한데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집에 전화해봐라.”

평소에 윽박지르던 허병장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의 태도는 너무나 차분했고 담담했다. 나는 곧바로 공중전화로 향했고 그제서야 그 말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교통사고였다. 기력이 다해서 돌아가신게 아니라... 사고였다. 전화를 끊고서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입대하기전 봤던 초라한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스쳐지나갔다. 두 뺨에선 뜨거운 눈물이 흘려 내렸다. 멈추질 않았다. 가슴은 터질듯이 뜨거웠고 동시에 심장이 조여 왔다. 그렇게 한동안 전화박스에서 훌쩍 거렸고, 어느 정도 마음을 다잡은 나는 행정실로 들어가 청원휴가를 신청했다.

새벽부터 일어나 허겁지겁 달려왔다. 도착한 곳은 병원 뒤 지하 장례식장. 지하로 연결되는 입구에 고무부의 모습이 제일먼저 보였고,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지하의 어두운길은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고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어두컴컴해져 갔다. 아침이어서 그런지 몇몇의 마을 어르신들을 제외하고는 일가족 친지들이 전부였다. 전투복 차림 그대로 절을 올렸고, 한참을 말없이 할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바라봤다. 그동안의 많은 기억들이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말썽부리던 어릴 적에 까불다가 빗자루로 얻어맞았던 기억, 할아버지를 부둥켜안고 오토바이를 타고 오다 넘어져서 할아버지의 팔이 부러진 기억, 가을 추수철이면 항상 막걸리 심부름을 시키던 할아버지의 잔잔하고 친근한 목소리... 모두 어제 있었던 일인 마냥 생생하기만 했다. 5남매를 키우시면서 따듯한 방에서 두 다리 한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지내오신 할아버지. 무엇하나 넉넉하지 못했고 자식새끼들 다 시집장가 보내놓고 남은 빚 갚으려 지긋한 연세에도 일을 놓지 않으시다 이제 좀 편해지려나 싶었는데 그만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렇기에 가족들의 가슴은 더욱 아팠고 그 현실은 참담했다. 생전에 교회를 자주 다니셨고, 그 때문에 장례식장엔 교회 분들이 많이 찾아주셨고, 발인을 하는 날까지 어두컴컴한 장례식장은 울려 퍼지는 찬송가로 인해 조금은 밝아질 수 있었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셨고,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며 나는 부대로 복귀해야만 했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어느덧 나는 2년 만기 군 생활을 시원섭섭한 마음과 함께 끝마쳤다.
전역하고 얼마 있지 않아 친구들이 줄을 이어 전역하기 시작했고, 입대하기 전의 생활과 비교해 틀린 것이 없었다. 12시가 다되서야 뒤척이다 겨우 잠자리에서 일어났고 서서히 어둠이 찾아올 때쯤 하나씩 모이기 시작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술자리는 언제나 떠들썩했다. 저마다 군대애기를 꺼내며 자기가 제일 빡쌘곳에 있었다고 자랑이 끊길 줄 몰랐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은 허무하게 흘러갔고 친구들은 저마다 마을을 떠나 학교로 돌아갔다. 이제 남은 건 나 혼자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마지막에 남는 건 갈 때 없는 나뿐이었다. 집에 혼자 있으려니 갑갑했다. 부모님에 대한 투정만 늘어갈 뿐이었다. 나는 아무 일거리라도 찾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개나리가 한창일 때 무작정 보따리를 들고 서울로 향했고 찾아간 곳은 공장을 다니는 고등학교 친구의 허름한 자취방이었다. 나름대로 서울와서 자리 잡았다고 자랑을 했었는데, 현실은 너무 많이 달랐다. 들어서는 입구부터 지저분했고 골목골목을 비집고 들어선 지하 원룸은 어둡고 초라했다. 마치 할아버지의 장례식장 같았다. 문을 열자 구석 싱크대에는 설거지 거리가 가득했고 심한 악취가 코끝을 찡하게 만들었다.

“야 방꼬라지가 이게 뭐냐? 좀 치우면서 살지?!”
“피곤한데 뭐 하러 치워~ 어차피 치워봤자 금세 드러워질텐데…….”

앞으로 이런 곳에서 같이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갑갑했다. 하지만 나는 오갈 데 없는 신세였다. 아침이슬만이라도 피할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내일부터는 친구가 다니는 공장에 같이 가보기로 했다. 친구는 마침 일자리가 하나 비었는데 잘됐다고 했다. 이제 드디어 나도 사회생활이라는 것에 한 발짝 다가서는구나 라는 설레임 반 긴장감 반이었지만, 그것이 앞으로 다가올 비극의 시작이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서울의 낮은 내가 살던 곳과는 차원이 달랐다. 지하철이라는 것도 처음 타는 순간이었다. 긴장됐다. 만에 하나 어설픈 실수라도 해서 내가 시골 사람이라는 것이 들통 날까 조심스러웠다. 지하철의 아침은 너무나 숨 가빴다. 사람 각각마다 어디로 향하는지 발걸음이 빨랐고 표정은 경직되어 있었다. 한손에는 신문, 또 어떤 여자의 손에는 커피 등 다양했다. 공장으로 향하는 내내 이리저리 모든 게 신기해서 두리번거렸더니 목이 다 뻐근할 정도였다. 친구는 그런 내가 창피했던지 멀찌감치 떨어져서 중간 중간 잘 따라오는지 위치만 확인할 뿐이었다.
공장에서 내가 맡은 일은 단순했다. 몇 가지 부품이 있었는데 맞춰 끼우고 나사를 조이기만하면 되는 일이었다. 처음엔 쉬워보였지만 10시간 이상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하다 보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그만큼 월급은 보장되어 있었다. 어느 정도 생활을 하고도 저축할 돈은 있어 보였다. 저축을 할 계획은 있었지만 나중에 그 돈을 모아서 어떻게 해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아직까진 그저 돈을 모으는 게 전부였다. 일이 끝나고 친구와 줄곧 집 앞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으로 피로를 달랬고, 점점 도시 생활에 적응이 되다보니 유흥생활도 즐기게 되었다. 나이트란 곳을 처음가보게 되었는데, 현실과는 완전 다른 세상이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청춘을 불태우고 있었고 그곳에서 만난 여자들과 자연스레 하룻밤도 보내게 되었다. 이런 생활이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는데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다. 벌써 적응해서 서울 티내는 친구가 부러웠고 한편으로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일을 하면서 한 달에 두 번 쉬는 날이 있었는데 그 날엔 하루 종일 집에서 낮잠을 자는 게 전부였다. 일이 힘들다 보니 여가를 즐길 여유는 없었다. 그저 밤에 먹는 야참과 소주 한 병이 전부였고, 나이트클럽에서 처음만난 여자와 하루를 즐기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에 조금씩 지쳐갔고, 그날도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평범했다. 그날따라 아침부터 유난히 비가 많이 왔고, 느닷없는 폭우에 사람들의 불쾌지수는 상승해 있었다. 바쁜 출근길 지하철이 도착하고 문이 열렸다. 사람들은 쏟아지는 비마냥 문 앞에서 쏟아졌고 들어가려는 순간 어떤 한 남자와 어깨가 심하게 부딪쳤다. 출근에 늦은 탓에 나는 그 남자의 얼굴을 한번 흘낏 보고는 고개를 아래위로 한번 끄덕였다. 하지만 그 남자는 이내 내 멱살을 잡고 문 밖으로 끄집어내더니 갑자기 온갖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야이 새끼야! 젊은 놈이 쳤으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 할 거 아냐!”
“뭐라고? 언제 봤다고 새끼야!”
“뭐?! 새파랗게 어린놈이 말하는 품새 하고는 한번 죽어볼래?”

그렇게 우리는 한바탕 멱살잡이를 했고 바쁜 와중에도 주위는 온통 구경꾼들로 가득 찼다. 하지만 어느 누구하나 말리는 사람 하나 없었다. 숨이 헉헉 거릴 만큼 한참 씨름을 하고 나서야 지하철 경비들이 달려왔고, 간단한 신원조회 끝에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아침부터 재수 더럽게 없는 날이었다. 헐레벌떡 공장으로 향했고 작업장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반기는 것은 딱 봐도 화가 난 주임 얼굴뿐이었다. 나는 차분히 아침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지만 입에서 나는 술 냄새 때문일까 주임은 믿어주질 않았다. 결국 쉬는 날을 반납하기로 결정하고 나서야 끝이 났다. 담배를 한 모금 피고 나서야 겨우 진정이 됐고, 마음을 다잡고는 작업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아침에 있었던 불쾌한 일 때문에 집중이 되질 않았고 결국 나의 실수 때문에 공장의 제품 생산라인이 멈추는 사고가 발생하고야 말았다. 화가 난 주임은 곧장 달려와서 나의 뺨을 때렸고 한쪽 구석에 나자빠진 나는 일어날 의욕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괜찮냐? 맞은 대는 좀 어때?"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친구가 내 안부를 물었다.
“괜찮을 리가 있냐? 존나 짜증나 죽겠다.”
“종종 있는 일이야. 니가 참아야지 별 수 있냐? 술이나 한잔 하러 가자.”

그랬다. 이 넓은 땅에서 지금 하소연할 때라곤 옆에 있는 유일한 친구가 전부였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참는 일 밖에 없었다. 참고 또 참아야 하는 게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이때 처음 뼈저리게 깨달았다. 아픈 뺨을 어루만지며 친구와 나는 평소와는 다르게 근사한 술집에 들어갔고 소주잔이 아닌 글라스에 폭탄주를 연거푸 2잔을 들이켰다. 속이 상해서 인지 여느 때보다 술이 금방 취하는 것 같았다. 원망스러웠다. 가난하게 태어난 것이 제일 원망스러웠고, 그러한 현실 속에서 열심히 일하지 않는 아버지도 원망스러웠다. 이 넓은 세상에서 난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펐다. 슬프고 창피했다. 할 수만 있다면 부잣집 아들로 다시 태어나고 싶었다. 나는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향했고, 겨우 겨우 도착한 화장실 소변기에서는 누군가 먼저 일을 보고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거울을 보고 있었는데 누군가 나를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방금 소변을 보던 그 사람이었다. 나를 비웃고 있었다. 분명히 나를 쳐다보며 비웃고 있었다.

“야이 씨발놈아, 지금 나보고 웃었냐?”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사람은 먼저 웃고 있었고, 이내 더 크게 웃기 시작했다. 화가 났다. 아니 화가 나기보다는 수치심이 생겼다. 참을 수 없었다. 끝내 나는 그 사람을 밀쳤고 동시에 머리를 잡고 세면대에 힘껏 내려치기 시작했다. 두 번 아니 네 번 ... 팔에 힘이 없을 때까지 내려쳤다. 머리를 잡은 내 손에서는 뜨거운 무언가가 흘러내렸고 바닥을 뒤덮었다. 그것은 빨간색이었다. 그랬다. 피였다. 그것은 분명 내가 만들어낸 피였다. 술이 취해서 일까 떨리지 않았다. 통쾌했다. 나는 거울을 보며 어설픈 미소를 지었다. 마음속으로 말했다.

“그래, 내가 해냈어! 내가 해낸 거야.... 세상에 복수를 했다고! 하하하!”
생각도 잠시 나는 곧 정신을 잃었고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졌다.

나는 힘겹게 눈을 떴다.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왔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물을 마시려고 일어나려 애썼다. 하지만 팔에는 붕대가 감겨져 있었고 이곳이 친구 원룸이 아닌 병원이라는 것, 그리고 나는 지금 병원 침대에 누워있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붕대를 감은 팔보다는 머리가 깨질듯이 더 아파왔다. 주위는 바쁘게 움직이는 간호사들로 어지러웠지만 난 고요했다. 전화벨이 울리는 소리... 환자들의 신음소리... 다급히 간호사를 찾는 소리들이 나에게는 너무나 고요하게 들려왔다. 한두 시간쯤 지났을까 철테 안경을 쓰고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 한명과 가죽재킷에 스포츠머리를 한 남자 한명이 나란히 내 앞으로 걸어왔다. 짧은 머리를 한 남자가 대뜸 나에게 물었다.

“너 왜 그랬어? 신원조회 해보니까 서울 사람도 아니더만…….”
“네? 무슨 소릴 하시는지... 그리고 제가 왜 여기 누워있죠?”
“허... 이놈 봐라. 니가 어제 저지른 일 기억 않나? 너는 곧 경찰서로 이송 될꺼야 잠자코 있어.”

경찰서라... 이건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지?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 했다. 나는 분명 어제 친구랑 술을 먹다가... 화장실에...순간 번쩍 정신이 들었다. 온몸의 털끝이 서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 모든 것이 기억이 나는 순간이었다.

“그...그... 그 사람 어떻게 됐죠? 내가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거죠?”
“이제야 정신이 드는 모양이구만... 죽었어. 그것도 방금 전에.”

손이... 아니 온몸이 떨려왔다.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내가 사람을 죽인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불안했다. 처음으로 느끼는 극도의 불안감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앞이 캄캄했다. 더군다나 간호사들의 시선 또한 이상했다. 내가 살인자라는 것을 다 아는 듯한 기분 나쁜 표정들이었다. 형사들이 없는 틈을 타서 도망칠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모른다고 발뺌을 하면 어떻게 될까하는 갖가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렇게 온갖 잡생각들을 하는 동안 시간은 흘러갔고, 서너 명의 형사들이 들이닥쳤다. 마침내 나는 옷을 추스르고 경찰서로 이송됐다.

여닫이문을 몇 개나 열고 들어섰다. 경찰서는 생각과는 다르게 한가했다. 잘 정돈되어 있었고 깔끔했다. 김 형사라는 사람이 나를 안내했고, 내게 맞을만한 옷을 고르더니 던져주었다.

“빨리 그거 입고, 따라와.”

팔에 붕대를 해서 인지 옷을 갈아입기가 불편했다. 원래 입었던 옷은 책상 위에 올려놓고 형사를 따라갔다. 내 눈에 먼저 띈 것은 취조실이라는 명패. 어떠한 일이 들이닥칠지 예상이 됐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검은 철제 책상과 의자가 두 개 포장마차에나 있을법한 조명등만이 유일한 불빛이었다.

책상 앞에 마주앉은 형사는 가만히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이내 말문을 열었다.

“너 지난 4월 8일밤 10시에 낙성대역 앞에 있는 모찌호프집에 있었지? 왜 죽였어? 사람을 죽였으면 이유가 있을꺼 아냐. 아는 사람이야?”
“아...아니요.. 처음 보는 사람이었어요.”
“근데 화장실은 왜 따라갔어?”
“소...소변보러 갔었어요..”
“그럼, 소변보러 가다 사람을 죽인거야?”
“아뇨...아..아.. 아니에요. 그...그..런거 아니라구요!”
목소리가 떨려왔다. 손도... 아니 몸 전체가 심하게 떨려왔다.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거짓말을 해야 할지... 아니면 전부다 사실대로 털어놔야 할지 몰랐다.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속으로 한없이 나 자신을 욕했다. 그날 그 자리에서 술을 마신 내 자신을, 내 운명을 저주했다.
“왜 울어? 그래... 많이 후회 되지? 좀 쉬었다 하자.”

형사는 나를 남겨둔 채 밖으로 나갔고, 나는 혼자 고개를 숙인 채 흐느끼고 있었다. 한참 뒤에 형사가 들어왔고, 말을 꺼냈다.

“시골에서 네 소식 듣고 아버지가 올라 오셨다. 면회는 원래 안되지만 간곡히 부탁하셔서 특별히 해주는 거니까 시간을 많이 줄 수는 없어. 알겠지?”

아버지라니... 어떻게 알고 이리도 빨리 올라오신 걸까... 아버지 뵐 면목이 없었다. 더군다나 내 두 손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는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

“재범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니가 한 짓이 맞냐?”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고... 그저 죄송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고 아버지는 담배만 태우셨다.

“미안하다... 다 아버지가 못난 탓이다. 이게 다 내가 못나서 일어난 일....” 결국 아버지는 말끝을 흐리셨고 눈물을 보이셨다. 가슴이 찢어졌다. 그동안 아버지를 미워했었는데... 절대 아버지 같은 사람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이런 꼴을 보이다니... 내 자신이 너무나 한심스러웠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냥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울지 마라 아들아. 아빠가... 이 아빠가 힘이 닿는대까지 노력해보마. 다 잘될 거야. 너무 걱정하지마라.”
더 이상 면회가 안 된다는 형사의 말에 아버지는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나셨고, 쓸쓸히 걸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너무나 외로워 보였다. 마치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뒷모습 같았다.

그 뒤로 아버지는 몇 번이고 면회를 더 오셨고, 오실 때 마다 내가 좋아할만한 음식들을 많이 싸오셨다.

“아버지. 난 사실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많이 미웠어요. 엄마를 때리는 모습이 제일 싫었고, 가난한 것도 죽도록 싫었어요! 더군다나 살인을 저지른 이 못난 아들을 왜 자꾸 찾아오시는 거죠?”
아버지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으셨고 한참이 지나서야 말씀하셨다.
“그래... 다 애비 잘못이다. 용서해다오... 하지만 너는 내 자식이다. 내가 오지 않으면 누가 널 찾아오겠니? 용서해다오 제발.....,”

그 뒤로 아버지와 난 많은 애기를 했고, 나는 고개를 숙인채 한없이 울기만 했다. 아버지는 이런 못난 나를 부둥켜 안아 주셨다. 그 이후로 아버지와 나는 다짐했다. 지난 일들은 모두 훌훌 털어버리고 새 출발하자고... 다 잘될꺼라고 다짐하고 다짐했다.

/ 최진석(경영·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