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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의 인문학] 이스라엘인들은 붉은 흙에서 인간 나왔다고 믿고 중국과 일본에서 신생아는 ‘빨간 아기’라고 불러중국은 홍건적, 적벽대전 등 붉은색과 깊은 인연 러시아 ‘붉은 광장’은 붉지 않은 포석(鋪石) 광장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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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26  11:5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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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과 달리 러시아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은 붉은색으로 이뤄져 있지 않으며 다갈색의 포석 (鋪石)이 깔려 있는 광장이다. 대신 ‘붉은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네 변의 주요 건물들 가운데 왼쪽에 위치 한 크렘린 궁전의 담장과 함께 정면에 보이는 러시아 국립역사박물관의 외양이 오히려 짙은 붉은색으로 붉은 광장의 분위기를 연출해 주고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커먼스.

인류의 붉은색 안료 사용은 생각보다 오래됐다. 고고학에 따르면 이미 7만5천년 전, 남아프리카의 블롬보스 동굴에서는 빨간 물감이 발견됐다. 인상적인 사실은 빨간 물감의 찌꺼기와 함께 빨간 얼룩이 묻은 구슬도 발견됐다는 것. 원시인들에게 있어 빨간색이 지니는 가치가 결코 평범하지 않았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함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북동쪽에 위치한 스와질랜드에서도 4만 년 전에 빨간색과 노란색 황토를 채취하던 광산이 발견된 바 있다. 빨간색과 노란색 황토는 몸에 그림을 그리는 용도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몸에 빨간 칠을 하는 행위가 아프리카에서 이미 수만 년 전에 등장한 이후, 지구촌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수많은 색깔 가운데 왜 빨간색을 염료로 만들어 몸에 바르게 됐을까? 이스라엘 언어인 히브리 구전에 따르면 최초의 인간은 붉은 흙으로 빚어졌다고 한다. 아담을 뜻하는 히브리어의 뿌리가 빨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중국어에서는 갓난아이를 ‘적자(赤子)’라는 뜻의 ‘치즈’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일본어에서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갓난아기는 ‘적자(赤子)’이며 붉을 ‘적’의 훈독(訓讀)이 ‘아카이(あかい)’, 사람을 이르는 접미사는 ‘짱(ちゃん)’인 까닭에 일본어로 어린 아이는 ‘아카짱(あかちゃん)’이라 부른다. 그렇게 볼 때, 탄생 자체가 붉은색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인간이 붉은 칠을 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못해 당연하기까지 하다는 생각이다.

돌이켜 보면, 인간이 붉은 흙에서 나왔건 태어날 때부터 붉은색이었건 간에 고대부터 빨강은 악마와 귀신을 쫓는 색으로 여겨져 왔다. 그리하여 동아시아에서는 소나무 가운데에서 붉은 빛을 띤 적송(赤松)이 상서로운 나무로 여겨져 신목으로 널리 받아들여졌다. 이와 함께, 밤이 가장 길어 귀신들이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음력 동짓날에는 붉은 팥으로 죽을 쑤어 귀신들을 쫓았던 곳 또한 동아시아였다. 물론, 이 같은 붉은색 풍습의 원조는 동아시아의 맹주였던 중국이었고.

말이 나온 김에 붉은색과 중국의 인연을 거론해 보자면 오늘날의 중국이 공산당의 붉은 대륙으로 변한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먼저, 중국과 붉은색의 인연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단어가 홍건적이다. 몽고가 중국을 점령하고 세운 원나라에 항거해 백련교와 미륵교의 신자들이 머리에 붉은 천 조각을 두르기 시작하며 등장한 홍건적은 이후, 중국의 북쪽 지역을 장악하며 대륙을 큰 혼란에 빠뜨린다. 하지만, 원의 반란군 진압이 마침내 성공을 거두면서 홍건적은 소멸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건적의 무리에서 출발해 나중에는 독자적으로 군대를 모아 세력을 키운 이가 명나라의 시조 주원장이다. 중국의 정통 왕조 가운데 하나인 명나라의 뿌리가 홍건적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 명나라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조선을 도와 명군을 파견하며 왜군을 물리쳤기에 홍건적의 인연은 우리와도 상당하다 하겠다.

붉은색을 둘러싼 대륙의 또 다른 소재로는 적벽대전을 들 수 있다. 삼국지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적벽대전에서는 조조의 100만 대군에 맞서 신출귀몰한 지략가, 제갈공명이 조조의 육군을 화공(火攻)으로 일거에 섬멸시키는 대장관이 연출된다. 실제로 절벽이 붉은 빛을 띠어 적벽이라 이름 붙여진 이곳에서는 수백 척의 배들을 쇠사슬로 엮은 조조의 육군을 깡그리 불태우며 붉은 세트를 더욱 붉게 만들어 버렸다.

한편, 이름에서 비춰지는 붉은 기운이 적벽 못지 않은 곳으로는 러시아의 ‘붉은 광장’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붉은 광장’은 17세기말부터 ‘크라스나야(아름다운)’ 광장으로 불리다가 ‘크라스나야’라는 단어가 붉다는 뜻도 지니고 있어 이후, 자연스럽게 붉은 광장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필자가 사진을 통해 확인해 본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은 결코 붉지 않았으며 평범한 포장용 돌이 깔린 광장이었을 뿐이다. 그런 붉은 광장은 오히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네 개의 주요 건물들 가운데 대통령 궁인 크렘린의 담벼락과 함께 국립역사박물관이 온통 붉은 벽돌로 장식돼 있어 ‘붉은 건물들로 둘러싸인 광장’이라는 표현이 좀 더 적절한 듯하다.

사실, 러시아 또한 붉은색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1917년 10월 혁명을 러시아에서는 ‘붉은 10월’로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미국으로 망명하려는 러시아 핵잠수함의 이야기를 픽션으로 다룬 톰 클랜시의 소설이 ‘붉은 10월(The hunt for Red October)’이다. 물론, 붉은 10월은 러시아가 진수시킨 최첨단 원자력 잠수함의 이름이고. 이런 원작 소설의 제목은 ‘붉은 10월호 사냥하기’였지만 한국에선 그냥 ‘붉은 10월’로 번역됐다. 훗날 영화로도 제작된 ‘붉은 10월’은 흥행에서 대성공을 거두며 톰 클랜시에게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주었다. ‘붉은 10월’은 또한 이를 감명 깊게 읽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톰 클렌시를 백악관에 초대해 대담을 나누게 하는 에피소드를 낳기도 했다. 한편, 영화에서는 미 헐리우드의 명배우였던 숀 코너리와 알렉 볼드윈이 호흡을 맞춰 긴장감 넘치는 명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럼, 다음 시간에는 빨간 색을 둘러싼 나머지 이야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심훈 미디어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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