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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의 인문학] 스페인이 아즈텍 문명 멸망시키며 얻은 ‘연지벌레’ 1kg의 빨간 염료 가루 얻기 위해 10만마리 길러야옷 염료는 물론, 딸기맛 우유, 케찹, 요거트 등에도 첨가 립스틱, 틴트, 아이쉐도우 등 화장품에도 ‘연지벌레’ 가루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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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02  08:3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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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설명. 남미의 인디오가 전통적인 방식으로 ‘연지벌레’를 선인장에서 모으는 방법을 그린 스페인의 기록물. 오늘날 의복 염료는 물론, 먹거리 착색료로도 널리 사용되는 연지벌레의 ‘코치닐’ 추출물은 사탕을 비롯해 햄, 맛살, 명란젓, 훈제 오리 등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출처: 네이버

일설에 의하면 산타클로스의 모델로 일컬어지는 성 니콜라스 주교는 빨간 옷을 입고 다녔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런 그가 초록색 옷을 입은 그림도 종종 발견된다는 것. 그리하여 19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갈색을 포함해 각양각색의 옷을 입은 산타클로스들이 등장했지만 19세기 이후부터는 빨강이 산타클로스의 옷 색깔을 평정하게 된다. 더불어 오늘날 가장 널리 알려진 산타클로스의 이미지는 스웨덴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인 헤이든 선드블롬의 작품이다. 그런 그는 코카콜라에서 일했는데 그러고 보면 빨강에 하양으로 이루어진 코카롤라 브랜드 로고 역시, 그의 작업과 묘한 상동성을 지니고 있다. 참, 빨강과 흰색은 페루의 국기 색깔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페루는 코카콜라 및 산타클로스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이유는 바로 1920년대까지 코카콜라 레시피의 일부였던 코카 잎의 원산지가 페루였다는 데 있다. 결국, 산타클로스에서부터 페루를 거쳐 코카콜라 브랜드에 이르기까지 빨강의 연대기(連帶記)가 일맥상통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 빨강을 몸에 바르지 않고 옷감의 염료로 가장 먼저 활용한 이들은 놀랍게도 중세 시대의 중남미인들이었다. 이른바 아스텍인과 잉카인 그리고 마야인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사실, 빨강색을 옷감 염료로 사용하려는 시도는 기원 전부터 꾸준히 이어져 왔다. 하지만, 비를 몇 방울만 맞아도 염료가 쉽사리 씻겨 나가는 통에 오랫동안 빨간 색을 유지할 수 있는 염료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런 가운데 최상의 붉은 염료를 함유한 자그마한 벌레가 중남미에서 원주민들에 의해 발견돼 그들의 옷감을 위해 소중하게 키워지고 있었다. ‘연지벌레’라는 이름의 곤충이었다. ‘연지벌레’는 가시배선인장이라는 식물의 잎사귀를 먹고 사는데 이 벌레를 말려서 곱게 으깬 다음, 백반과 섞어 만들어 내는 빨간 색 염료는 옷감에 물들일 경우, 색깔이 바래지 않는 특성을 보였던 것이다.

이에 아스텍 문명을 멸망시킨 에르난 코르테스가 자신의 부하들과 함께 처음으로 남미를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그의 눈에 들어온 것 가운데 하나가 황금과 함께 새빨간 의복을 입은 아즈텍의 황제와 귀족들이었다. 결국, 코르테스는 식민지 백성들로부터 그 제조법을 알아낸 뒤, 이 놀라운 붉은 염료를 꾸준히 생산하면서 자신과 조국을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 들였다.

약 2세기 동안 스페인인들은 이 조그마한 곤충의 존재를 극비에 붙이면서 자신들의 붉은 색 염료와 관련된 온갖 황당무계한 소문을 퍼뜨렸다. 사실, 이 같은 일은 전혀 낯선 것이 아니었다. 후추를 비롯한 향료를 둘러싸고 인도와 유럽의 중간에서 엄청난 폭리를 취했던 아랍인들 역시, 후추의 원산지를 철저히 숨기면서 지구 끝 오지에 살고 있는 괴물들의 나라에서 목숨을 걸고 후추를 구해온다고 유럽에 말하고 다녔다. 자신들에게 천문학적인 이익을 가져다 준 향신료의 원산지는 최고의 영업 비밀이었다.

결국, 스페인인들의 빨간 색 염료 비밀은 우리나라의 문익점에 해당하는 티에리 드 모농빌이라는 25세의 프랑스 청년에 의해 1777년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그는 ‘연지벌레’로 뒤덮인 선인장 한 그루를 아이티의 포르토프랭스에서 몰래 빼돌려 그곳에서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빨간 염료 제조법을 익혀 세상에 퍼뜨렸다. 특허권이나 지적 재산권이 없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래도 문제는 상존했다. 빨간 염료 1kg을 생산하려면 ‘연지벌레’가 10만 마리 이상 필요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같은 숫자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까닭에 비록 다른 나라에서도 빨간 색 의료를 직접 만들 수 있게 됐지만 가격은 여전히 비쌀 수밖에 없었다.

비용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고대부터 신분 사회에서는 자신이 속한 계급에 따라 의식주를 철저히 규제해 왔다. 따라서 빨간 색을 살 여건이 돼도 평민들에게 빨간 옷은 여전히 걸칠 수 없는 금지품이었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던가! 그렇게 의류계에서 최고의 주가를 드날리던 붉은 옷은 1870년대에 합성 염료가 나오면서 드디어 최고의 위치에서 내려오게 된다. 값도 싸면서 물이 안 빠지지는 합성 염료, ‘알리자린’은 이제 최고급 상품이었던 빨간 옷의 속성을 일거에 천박하고 선정적인 상품으로 바꿔버렸다. 이제는 빨간 옷이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기에 가장 값싸고 저급한 색깔로 전락한 것이다. 이른바 ‘빨간 옷의 몰락’이라고나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간 색이 여전히 위용을 떨치고 있는 대상이 있다. 바로 붉은 카페트이다. 각종 영화제는 물론, 대관식과 취임식에서도 의례적으로 선보이는 빨간 카페트는 오늘날, 마지막으로 남은 빨간 색의 자존심이다.

이쯤에서 질문 하나 더. 그렇다면 ‘연지벌레’의 존재 역시, ‘알리자린’에 밀려 그 존재감을 상실했을까? 답은 “아니올시다”이다. ‘연지벌레’는 여전히 오늘날에도 가장 널리 사랑받는 염료로 특히 먹거리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합성 염료와 달리, 곤충에서 채집한 천연 색소인 까닭에서다. 먹거리 가공품에 표기돼 있는 식품 첨가물에 있는 ‘코치닐’이 그것으로 ‘코치닐’은 오늘날 딸기맛 우유에서부터 케찹, 요구르트, 초콜릿, 과자는 물론, 립스틱과 틴트, 아이쉐도우 등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그런 연지벌레의 ‘코치닐’ 염료도 경우에 따라서는 과민성 쇼크나 천식 등과 같은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다니 ‘연지벌레’가 우리에게 건넨 최후의 저항이라고나 할까?

/심훈 미디어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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